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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건강실록_좋은 시도, 빈약한 결과

WiredHusky 2018. 10. 28. 10:13





<조선왕조 건강실록>은 <조선왕조 실록>이 아니라 <승정원 일기>에서 이야기의 근거를 찾는다. 왕조 실록만큼, 아니 왕과 비빈, 기타 그 가족들과 관련된 병에 대해서만큼은 실록보다 훨씬 상세히 기술한 것이 <승정원 일기>다. 한의학을 전공한 9명의 저자는 방대한 양의 사료를 뒤져 35개의 이야기 꼭지를 뽑아냈다.


크게 1, 2챕터는 왕과 비빈의 생로병사를 기술하고 3, 4에서는 조선시대에 이름을 떨친 의사들과 왕궁에서 향유한 의료 문화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9명이나 되어 글의 질이 들쭉날쭉하고 방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 2챕터는 사실상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저자들은 의학인으로서, 정치적 관점은 미뤄둔 채 철저히 병에 집중했다고 말하지만 그 탓에 이야기가 빈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승정원 일기>가 왕궁의 병사를 아무리 상세히 기술했다 하더라도 현대의 의학인들이 그것만 보고 당시의 병을 진단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시도는 아주 좋아보였지만 결과는 꽤 빈약했다. 현대 의학의 관점으로 당시의 병을 진단하고 가상의 치료를 상상해본다던가, 뭐 이런 파격적인 시도는 애초에 불가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1, 2챕터는 역사 이야기도, 의학 이야기도 아닌 어영부영한 자세로 지루한 줄타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3, 4챕터에서는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물론 여기서도 의사들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이나 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에 집중을 하니 어정쩡한 자세는 똑바로 서고 드디어 방향을 갖게 된다. 조선시대 의학 얘기라 하면 허준과 <동의보감>밖에 알지 못하는 나에게 전설적인 명의들의 이야기는 새롭고 다채로웠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지만 의학에서 만큼은 확실한 명성이 있었던 것 같다. 수백년 전에 활약한 꼬레(Corea)의 의사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나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챕터 4는 왕궁이 향유한 일종의 웰빙 라이프 소개서다. 화장품과 차, 각종 건강식들. 왕궁의 소소한 생활상을 써보려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디테일을 더하는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조선왕조 건강실록>은 시도는 좋았지만 좋게 봐줘야 30% 정도의 성공을 거둔 미완의 책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확실히 박수쳐줄 가치가 있다. <왕조 실록>와 <승정원 일기>에는 이것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누군가 이 사료들을 열심히 연구해 조선 역사를 그저 <왕조 실록>으로 퉁치지 않는, 다양한 분야의 독특한 관점을 담은 역사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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