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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_아무래도 박준의 팬이 된 것 같다. 본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_아무래도 박준의 팬이 된 것 같다.

WiredHusky 2018. 11. 4. 11:24





박준의 시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시는 시릴정도로 아리고 깊어서 나같은 사람은 도저히 닿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시는 나와 동일한 언어로 구성되는 데도 불구하고 완성된 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의 시를 읽고있으면 시인은 태생부터 다르다는 말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던 시인은 울고 또 운다. 이 책은 산문집으로 팔리고 있지만 실상은 시인지 산문인지 구별되지 않는 문장들이 초겨울의 낙엽처럼 쓸쓸하게 떨어져내린다. 단어 하나 하나에 시리듯 베어있는 감정들은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리거나 무관심으로 지나치면 툭, 하고 터져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어째서 시인들은 신경쇄약에 걸리지 않는 걸까? 돌담을 스치는 바람에도 가슴이 에는 통증을 느낀다면 삶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무너져내릴 것이다. 시는 무너져버린 삶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일까, 아니면 무너지지 않도록 빗대어 놓는 버팀목일까? 무엇이 됐든 시는 아리고 슬프다. 아리고 슬픈 시를 나는 읽고 또 읽는다.


어느 곳 하나 힘준 데가 없는데도 그의 문장은 높은 산처럼 다가온다. 그 무게엔 놀라울 정도의 끈기가 담겨 있어 반드시 목적한 곳까지 닿고나서야 주저앉아 해소의 감정을 풀어낸다. 나는 그 발걸음을 본 순간 그것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추격전도, 총격도, 폭발도 없는 드라마인데도 긴장의 끈이 놓이지 않는다. 빨려든다는 표현은 그의 담담한 발걸음과 어울리지 않고 스며든다는 표현은 한 걸음 한 걸음 속에 담긴 힘을 전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이 담담한 시인의 발걸음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내 언어의 초라함이 나는 슬프다. 따라가기를 멈추고 머리를 쥐어짜보지만 허공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손에 쥐어지는 말은 없다. 그동안 시인은, 예의 그 담담한 걸음을 계속하고 내가 할 수 있는건 뒤쳐진 거리를 따라잡아 다시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지켜보는 것 뿐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인은 울고 또 운다. 마음 한켠에선 누군가의 고통을 이토록 뻔뻔히 구경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걱정이 스며든다. 나는 시인의 어깨를 다독여줄수도, 그의 손을 잡아줄수도 없다. 나는 돈을 주고 그의 책을 사 읽는 것이, 어쩌면 그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살에 갇힌 시인의 고통을 지폐 한장과 바꾼 천박함.


나는 아무래도 박준의 팬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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