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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수 같은 클래식 입문서 - 박수는 언제 치나요?

WiredHusky 2012. 2. 26. 15:00




에세이라는건 그렇다. 언제 봐도 부담이 없고 또 재밌다. 마치 남의 일상을 몰래 엿보는 것 같은 아슬아슬함도 준다. 그런데 에세이가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것이 인문 교양서의 탈을 쓸 때다. 무미건조하고 전혀 흥미롭지 않은 전문 지식을 생생하고 활기 넘치는 문체로 전달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쉽게 그 무거운 문을 쉽게 열 수 있다.






'박수는 언제 치나요?'는 클래식 입문서를 표방한 에세이다. 저자 다니엘 호프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신이 겪었던 음악 활동을 책 전체에 걸쳐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 중에는 뉴욕의 택시 기사를 만나 클래식 콘서트의 편견을 깨주게 된 일화 부터 유명 음악가들의 뒷 이야기, 시기별 음악 사조의 특징과 그 연주법까지 다양한 무게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음악가들의 뒷담화였는데, 사실 뒷담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또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일화라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클래식 음악가 하면 떠오르는 사람, 위대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그 자신도 작곡가였는데, 하루는 그 위대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곡은 짧고 가볍고 대중적으로 써라. 아무리 둔감한 사람의 귀도 간지럽게 할 수 있어야 한다.'(p.55)

너무너무 재미있는 얘기 아닌가? 오늘날 우리가 그 이름만 듣고도 머리를 쥐고 세차게 흔들 만큼 고루하고 지겨운 클래식 음악을 창조한 모차르트는 '곡은 짧고 대중적으로 쓰라'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음악 활동에 매진했다. 아마도 모차르트 부자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그 아버지는 모차르트에게 아이돌 가수가 되라고 당부했을 것이다. 이런걸 보면 클래식하고 고귀한 예술들도 한 때는 모두 저급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시대의 대중은 현대의 대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들은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성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속 음악가를 고용해 파티와 음악회를 수시로 열던 부자들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은 음악을 깊이 이해할 만큼 교양도 있었고. 하지만 이 일화로 미루어 보아 그 시대의 모든 대중들이 음악을 이해하고 있었던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확실한 건 하나다. 음악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오락 거리'였다는 것. 모차르트와 후원 귀족의 관계는 정확히 소속 가수와 소속사의 관계로 대치될 수 있다. 아마도 그 당시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오늘날 우리가 부여하는 권위과 지위를 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모차르트를 폄하한 것 같은데, 사실 모차르트는 엄청난 반항아였으며 단순히 고용된 음악가가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강한 에고를 지닌 진정한 아티스트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유명 작곡가들의 에고가 어느 정도 였는지, 이번엔 베토벤의 일화를 소개해 보겠다.






베토벤은 그 초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청나게 완고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로지 청중과 자기 자신에게만 책임을 지는 예술가의 길을 가려 했다. CD도 YouTube도 없던 그 시대에 음악은 오로지 귀족들이 여는 음악회를 통해서만 유통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귀족의 후원 없이는 어떠한 음악 활동도 불가능했다는 것. 베토벤은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예술적 자존심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를 후원하는 영주 리히노프스키가 자신을 업수이 여긴다고 느꼈는지 베토벤이 이렇게 말했다.


'영주님, 당신이 영주인 것은 우연과 출생의 덕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소. 세상에 영주는 수천이 넘지만 베토벤은 단 하나뿐이오!'(p.60)

음악가나 화가가 오늘날 우리가 얘기하는 '아티스트'가 된 것은 근대의 일이다. 절대왕정이 붕괴하고 부르주아 사회가 도래하면서 귀족의 후원을 잃게 된 '직업인'들이 저마다 살 길을 찾게 되면서 누구는 '진짜 대중'에게 팔리는 예술을 하고 누구는 고고하고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되면서 저급 문화와 고급 문화(예술)의 영역이 분리된 것인데, 사실 이 얘기는 이전에 발터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책을 통해 말했거나 앞으로 다른 책을 통해 말할 기회가 많으므로 이쯤에서 마무리 하겠다.

자, 이제 다시 에세이라는 장르로 돌아가자. 에세이는 이처럼 재미있는 '일화'로 가득하다.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할아버지의 옛날 얘기를 듣듯, 에세이에는 소소하고 유쾌한 진리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에세이라는 장르는 어쩌면 요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문학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길게 읽을 시간도, 펑키한 뭔가를 찾을 시간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보다 손쉽게 자극과 교양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소설가들이 에세이 작가로 전향하는지도 모르고.

'박수는 언제 치나요?' 한 권을 읽고 클래식에 통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입문서란 원래 강물까지 말을 끌고 가는 것이 전부다. 이 후에 그 거대한 강물을 다 들이키든 그 속에서 헤엄일 치든 그건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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