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책 읽는 꼰대가 되지 않기 본문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책 읽는 꼰대가 되지 않기

WiredHusky 2018. 1. 21. 10:30






책 얘기에 앞서 우선 이 책의 저자 마스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겠다.


마스다는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이라는(CCC) 기획 회사의 사장이다. 라이프 스타일을 기획한다. 가장 유명한 기획은 츠타야일 것이다. 츠타야는 사양 산업의 대명사인 '책'을 파는 곳이다. 그가 고급 주택가가 모여 있는 다이칸야마에 츠타야를 연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우선 입지가 나빴다. 다이칸야마는 고급 주택가가 몰려 있는 한적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일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동네와 거리가 떨어져 있기도 했다. 대부분의 서점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역과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그렇게 해도 힘든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외진 곳에? 고급 카페나 레스토랑도 아닌 서점을? 게다가 이 서점의 진열 방식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소설, 에세이, 실용서 등의 카테고리로 나눈 것이 아니다. 요리, 등산, 애견 등의 라이프 스타일로 묶인다. 예컨대 애견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분야를 막론한 각종 서적, 즉 개와 관련된 소설, 에세이, 잡지에 관련 용품까지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이런 진열 방법은 매우 불편하다. 전시하는 사람은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책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전시해야할지 매번 생각해야 한다. 어느 소설가의 낚시 이야기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낚시일까? 아웃도어 라이프? 아니면 작가의 사생활?


하지만 츠타야는 대성공을 거둔다. 개점 2년 만에 수십 년간 서점의 왕으로 군림하던 도심 중의 도심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의 매출을 넘어섰다. 다이칸야마의 유동인구는 3배가 늘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음은 말은 안 해도 알 것이다.


결과를 보면 매우 독특해 보이지만 사실 CCC의 기획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정보의 홍수로 넘치는 세계라는 상투어를 굳이 써야 할까? 과거엔 정보를 얻기 위해서 동네 도서관이나 서점을 들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으로 정보는 넘쳐나고 사람들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자유의 증가는 언제나 행동의 제약을 낳는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찾아야 할지 무한한 조합이 가능한 세계는 역설적으로 어떠한 선택도 어렵게 만든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정보를 탐색했지만 이제는 정보가 사용자를 탐색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늘어난 여가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나타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인터넷을 키거나 서점에 들르는 것이 아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며 '기웃거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보는 적극적 탐색과 사냥의 대상이 아닌 브라우징의 대상이다.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며 눈길을 끌만한 것들을 찾는다. 소파에 몸을 묻고 리모콘을 든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CCC의 마스다는 츠타야가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이라고 했다. 콘텐츠 업계에 몸 담았던 사람들은 최근 이 업계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 하나를 기억할 것이다. 큐레이션. 수 많은 정보 중에 입맛에 맞는 걸 쏙쏙 골라 맞춤형 패키지를 내놓는 것. 이른바 '대 편집의 시대.' 마스다는 누구보다 먼저 이 변화를 파악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이 책은 마스다가 CCC를 운영하며 틈틈히 적은 블로그의 글들을 모아 놓았다. 기업가로서 가져야하는 마음가짐부터 거래 업체를 대하는 태도까지 각양의 생각들이 단편적으로 늘어서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하는 건 내 생각이 마스다와 일치한다고 해서 내 행동을 합리화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한 사업가와 내 생각이 같다니, 역시 나는 옳았어. 더욱 정진하자.


마스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을 뿐 그 생각을 현실화 하는 과정과 방법을 세세하게 기록한 것은 아니다. 결국 차이는 생각이 아니라 행위에서 드러난다. 본디 근본적 신념이나 이상은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사업은 신뢰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고객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등등.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이상이 같다고 방심해선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끝없이 시험해 보고, 끈질기게 바꿔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책을 읽은 꼰대가 될 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