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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미래_과욕의 결과

WiredHusky 2018. 2. 4. 17:10






이런 책을 읽고나면 언제나 화가나곤 하는데, 그래서 종종 객관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릴때가 있는 것 같다. 썩은 뻘에서도 진주는 나올 수 있고 더러운 응가도 비료가 될 수는 있으니, 앞으로는 최대한 진주와 비료를 찾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욕을 해봐야 남는 건 없으니까.


콘텐츠의 미래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네트워크 효과'에 대한 찬양서다. 네트워크 효과란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영향을 받는 효과이다. 쉽게 말해 대세론 같은 것. 그래서 모든 기업들이 그렇게 점유율에 목을 매는 것이다. 점유율이 떨어지는 건 단순히 매출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급격한 매출의 감소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줄어든 사용자가 남아있는 사용자의 이탈을 더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요즘 대세는 아마도 <배틀그라운드>일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일단 사람이 많아야 랭크 매칭도 쉽고 같이 하는 맛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deadPXsociety>라는 게임이 나와서 돌풍을 일으켰다고 하자. 사람들이 배틀그라운드를 잠시 접고 <deadPXsociety>로 몰려간다. 사용자가 줄어든 배그는 비슷한 레이팅의 사람들을 묶어 한 방을 구성하기 어려워지고, 게임 대기 시간의 증가와 유저간 실력 편차로 인한 플레이의 긴장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내 친구가 더 이상 이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온라인 상에서 하는 행동이 사실 거의 모두 소셜 액티비티다. NETFLIX를 보는 이유도 결국엔 "너 하오카 봤어?"를 말하기 위함이고 실시간 검색어를 찾아다니는 이유도 "야 그거 알어?"를 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네트워크 효과는 아주 중요하다. 태풍 두 개가 고만 고만 경쟁하는 듯 보여도 한 쪽이 조금이라도 커지는 순간 다른 태풍을 완전히 집어 삼키는 결과가 초래된다. Facebook의 마크 주커버그는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주커버그가 CFO인 새버린에게 "우리 시스템은 단 한번도 다운된 적이 없다."고 말하며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그만 이탈이 결국 MySpace를 무너뜨리고 Facebook을 세웠듯이 똑같은 일이 Facebook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이런 얘기를 665페이지에 걸쳐서 할 건 아니다. 저자 바라트 아난드는 네트워크 파워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도무지 이야기를 끝낼줄을 모른다. 제목을 네트워크 파워와 관련된 걸로 지었다면 천번 양보해 알겠다, 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미 다른 책들이 선점한 키워드인지 콘텐츠를 물고 늘어진다. 콘텐츠가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편견을 강타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예컨대 정말로, 네트워크 파워만 있으면 서비스가 성공하냐는 말이다. 한 예로, 저자는 애플의 성공 요인을 네트워크 파워에 눈 뜬 사업 전략 탓이라고(3rd 파티에게 자유로운 앱 개발 권한을 부여, window와 mac 모두에서 사용 가능한 기기들) 하는데 일견 맞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왜 애플은 더 큰 네트워크 파워를 가진 Android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걸까? 두 OS간 점유율 차이는 1.5배나 되는데도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을 강조하기위해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첫째, 형성된 네트워크의 힘을 찬양하면서도 애초에 그 네트워크를 이루게 하는 힘이 뭔지에 대해선 설명을 생략한다. 네트워크 파워가 전부라면 애초에 Facebook이 MySpace를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태풍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기엔 어떤 이유가 존재한다. 저자의 찬양론은 이미 네트워크 파워를 이룬 기업들이 그것을 이용해 더욱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애초에 어떻게 그걸 형성하는지에 대해선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네트워크 파워를 확보한 뒤에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광범위한 전략을 내놓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사업 요소를 더 철저하게 연결하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러면 그 힘을 어디까지 키워야할까? iPhone같은 창조적 파괴자를 숨도 못 쉬게 할만큼 짓밟아버리려면 얼마나 커야 하냐는 말이다. 온 우주를 덮을 정도로? 한때 나는 MS가 세계를 지배할 거라 생각했다. 온 세상 모든 컴퓨터에 윈도우와 오피스가 깔려 있었으니까. 저자도 인정하듯이 그 미국놈들보다 네트워크 파워를 잘 이해하는 조직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 책을 읽으며 확실히 배운 점 한가지는 뭔가에 심취해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을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만능키를 원한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창. 하지만 그 창이 언제든 우리의 목을 찌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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