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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_착한 놈과 나쁜 놈

WiredHusky 2018. 2. 11. 15:27





때로는 우직하게 전진하는 담백한 소설을 읽고 싶다. 반전도, 상징도, 복잡한 플롯도 없이, 직선대로를 달리는 소설. 그런 걸 읽고 나면 이야기가 가진 순수한 힘을 믿게 된다. 인간을 고양시키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끄는 순수한 힘 말이다.


<오픈 시즌>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의 담백함을 알아차렸다. 수렵감시관이 주인공이라면 광활한 대지와 산이 배경으로 등장할 건 분명했다. 이 모든 조건은 코맥 매카시에 대한 나의 향수를 지독하게 자극했다.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을 수 없기에 나는 그의 후계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나의 독서는 그 후계자를 찾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C.J. 복스는 코맥 매카시의 후예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실망시켰냐고? 절대. 나는 새롭게 발견한 이 시리즈에 내 시간을 온전히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오픈 시즌>은 조 피킷(시리즈의 주인공) 시리즈의 첫 책이고, 이 책은 이미 열일곱 권이나 나와 있으니까. 내가 할 일을 그저 서재에 앉아 기다리는 것 뿐이다.


매카시의 주인공들이 늘 무거운 숙명을 짊어진 상처받는 영혼, 혹은 기어이 상처를 얻고자 발버둥치는 우울한 영혼이라면 조 피킷은 그런 고민 따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맑은 남자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헌신하며,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박봉의 공무원. 한 마디로 옛날 사람. 이처럼 맑은 남자에게 미묘한 악의 고뇌가 파고들 여지는 없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잘한 건 잘한 거다. 마치 서부 개척 시대의 이상화된 남성상을 보는 것 같아 깊이에 아쉬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저 말을 타고 시원하게 초원을 달릴 때도 필요한 법이다. 단조로운 배경이 귀 뒤로 넘어가고, 상쾌한 바람이 머리를 스친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내 가족에게 총질을 한 놈을 찾아, 똑같이 산탄총을 날려준다. 


뱅!


떨어져나간 악인의 팔이 공중을 날으며 카타르시스를 뿌린다.


나는 이제야 막 첫 책을 본 셈이므로 이 남자가 어떻게 변해갈지 알 수는 없다. 어른이 되가는 과정을 우울과 악으로 채워 넣은 <해리 포터>처럼 조 피킷의 시냇물도 번뇌와 어둠에 삼켜질까? 마음이 맑은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을 이룬 사람에게 악의 모습은 숨길 수 없는 낙인으로 나타난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은 구별할 필요도 없이 명확하다. 조 피킷이 총을 꺼낸다면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그 단순함이 감기로 막힌 내 두 코를 뻥 뚫어준다.


앞으로 그와 함께할 여행이 기대된다. 조 피킷의 암말 루시를 타고, 혹은 그의 픽업 트럭의 짐칸에 앉아, 와이오밍의 빅혼산을 질주하는 상상을 해본다. 저 멀리 석양 속으로 사라져가는, 엘크의 성난 뿔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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