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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착각과 오만_양당제의 근본적 한계 본문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_양당제의 근본적 한계

WiredHusky 2018. 8. 5. 12:00






역사라는건 진짜 재미있다. 오늘날 부유한 소수계층을 일컫는 부르주아라는 말이 대혁명 시기에는 급진적 진보주의자와 사실상 동의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시민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던 그 시기, 이들에게 자유와 박애와 평등을 가져다 주려 애썼던 사람들이 바로 이 부르주아들이었다.


이들의 도움 덕분에 세상은 왕과 귀족이 지배하던 봉건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시민은 자기의 권리를 대변할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백년이 흘렀다. 인간은 진정한 평등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응?


2018년 오늘. 그 옛날 시민의 편에 섰던 부르주아들은 후기 산업 시대의 지배자이자 막대한 자본으로 정치의 목에 금사슬을 맨 신흥 귀족이 됐다. 오늘날 시민은 조각 조각난 권리를 손에 쥔 채 이 새로운 귀족의 장원에 매일 아침 출근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제든 자신이 출근할 장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본 사람은 안다. 더 많은 권리와 먹거리를 보장하는 장원으로 원하는대로 이동하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고, 자신은 그저 짤리지만 않게 간절히, 쥐꼬리만한 월급을 주는 귀족에게 미친듯이 꼬리를 흔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에 바로 현대 정치의 아이러니가 있다. 대부분의 양당제 국가에서 사람들은 한 당이 못가진 자의 편이고 다른 한 당이 가진 자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같은 경우는 민주당과 공화당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당과 자한당이다.


1930년대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구분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미국은 강력한 국가주의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의 황금기를 이뤘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를 하위 90%, 그러니까 진짜 '미국인'이라 부를 수 있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몰아줬다. 부유해진 미국인은 강력한 구매력을 이용해 경제 발전의 부스터를 달아줬다. 팍스 아메리카나. 걱정할 게 없는 시대였다.


그 시대엔 일반 공장 노동자와 한 회사의 대표가 받는 봉급의 차이가(이 책에 따르면) 고작 2, 3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박백년도 지나지 않아 이 차이는 적게는 수십배에서, 최대 수백배까지 치솟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 노동자들은 예전보다 더 많이 일하고 예전보다 더 적게 받는다. 앞서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미국인들의 실질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 동안 새롭게 떠오른 노동자들, 이른바 하이테크 지식 노동자, 전문 경영인,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는 경제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게 된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새로운 계층 '봉급 부르주아'가 도래한 것이다.


봉급 주르주아의 출현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이 글에서 다루기에는 너무나 방대하다.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이 지적하는 것처럼 중요한건 민주당이 하위 계급의 노동자가 아닌 이 봉급 부르주아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민주당의 지도자들은 노동 운동 출신이나 인권 운동가들이 아니었다. 물론 한때는 그런 사람들이 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들은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나 하이테크 산업의 CEO, 로펌의 대표 변호사들과 같은 학교에서(명문대) 공부하고 같은 생각을 공유한 동류였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 사회의 엘리트였고 지금 자기가 누리는 지위는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들 눈에 일은 안 하고 권리만 찾는 못 배운(그들이 보기에) 노동조합들이 좋게 비춰질 수 있겠는가? 민주당은 이제 노동조합이 바뀔 때가 됐음을, 그들은 무한 경쟁 시대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라는 걸 설파한다. 그리고 이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우리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조합의 파업을 태만의 증거로 보고 공무원들의 탄탄한 연봉과 고용 보장에 이유없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가. 그들의 좋은 조건을 자기 회사에도 적용하려는 마음을 먹는대신 기어이 그들을 끌어내려 자기와 같은 지옥에 빠뜨리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위 민중의 당, 경제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당이 앞다퉈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막대한 고용 창출 능력과 안정적 임금을 지불하던 제조업들이 모조리 외국으로 도망갈 수 있게 배려했다. 기업들은 Made in China 대신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같은 문구를 제품에 적고 고객은 여기에 열광한다.


민주당은 하이테크 산업의 지식인들과 서로 지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이 멍청한 공화당원들과 달리 혁신을 이해하고 있으며 혁신을 이끌 준비가 되어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제스쳐로 오바마는 빅데이터에 근거해 개별 유권자를 타겟팅한 선거 운동을 치를 수 있었고 힐러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은 부패한 금융 산업과도 친구를 맺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붕괴 직전에 이른 산업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 금융을 선물한 건 오바마였다. 이 돈으로 오바마는 방만했던 금융 산업의 고삐를 쥘 수 있었지만 그와 민주당은 AIG 임원들이 구제금융으로 막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 조차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니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슈퍼팩(공식 정치 후원금)에 월스트리트의 거액이 몰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진보 정당이 경제 불평등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그게 더이상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선거 후원금을 기부할 능력이 없다. 슈퍼팩은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과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를 통해 채워질 뿐만 아니라 세상은 그들의 말 한마디, 그들의 영향력에 좌지우지 된다. 게다가 그들은 정치,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고, 국민들이 혁신과 하이테크 대신 천사와 신을 믿기를 바라는 공화당에 태생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월스트리트는 비교적 중립적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이 돈많고 똑똑하고 영향력을 갖춘, 말까지 잘 통하는 엘리트들과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민주당은 이제 경제적 약자의 편에 설 이유도 여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전히 진보주의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이것은 민주당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양당제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우리 나라로 치면, 민주당이 아무리 못해도 그들을 지지해왔던 진보주의자들이 자한당을 찍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노동조합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한다. 이들이 딱히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기에, 


민주당은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들을 자신있게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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