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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 (719)
deadPXsociety
이 책의 제목 는 1969년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렸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에서 가져왔다. 이 전시는 전통적 개념의 예술 형식인 회화나 조각을 단정하게 보여주는 대신에, 비물질적이고 언어가 중심이 되는 작품들을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선보였다.(p.7~8) 이 전시는 68혁명 직후에 열렸다.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반전, 평등, 해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통제와 억압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보수적 질서는 모두 거부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기존 체제와 규칙을 비판적으로 바라봤으며,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예술계도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미술의 관습적인 틀을 거부하는 새로운 작품의 형식과 전시의 형태로 구현되었다. 쉽게 말해 보는 ..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우리는 모두 멍청이다. 노벨상을 받거나 각 분야에서 특출 난 업적을 쌓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믿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주변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보험금 청구나 은행 App에서 비대면 계좌 개설을 시켜보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멍청함은 인간이라는 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본 특성이다. 역사의 페이지를 조금만 들쳐봐도 이 주장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 신성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이자 사후 영웅으로까지 추앙된 프리드리히 1세는 십자군 원정 중 강에서 헤엄을 치다 물에 빠져 죽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강으로 달려드는 젊은 병사들을 보며 67세가 된 프리드리히의 마음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내 활력이 저..
은 읽는 이의 머릿속을 부글거리게 만든다. 주제와 문장이 너무 어려워 당신의 독해력을 평가하는 진정한 시험이 될 것이다. 덮지 않고 완주하면 독서 인생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상을 부여해도 좋다. 이 책 이후론, 그 어떤 책도 당신의 독해력을 넘지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가진 지식의 방대함에 놀라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읽고 보고 듣는 걸까? 아무리 그게 직업이라지만 누구나 알만한 작품부터 심해의 미확인 희귀종 찾기 대회에서 우승할 것 같은 생소한 작품들까지 손대지 않는 것들이 없다. 매체도 출판(책, 만화), 영화, 웹툰, 공중파 드라마, 예능, OTT 오리지널들까지 경계가 없다 못해 사실상 온 우주의 콘텐츠를 전부 흡수한 것 같은 경험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
대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자신의 조카이자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풋내기 악마 웜우드에게 악생의 선배이자 직장 상사로서 따끔한 충고를 담아 31통의 편지를 보낸다. 신과 함께, 영원히 살며 수많은 영혼을 타락시켜온 대악마의 눈에 유혹이랍시고 펼치는 조카의 기술들이 얼마나 어설퍼보였을까? 인간의 신앙에 내재한 모순과 약점을 정리해 더 효과적인 기술을 전수하려는 . 이것이 바로 다. 이 책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깊은 통찰을 전해준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스크루테이프의 충고에 정반대로 행동하면 믿음의 깊이를 더할 수 있고, 비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의 교리와 교인의 마음속에 내재한 모순을 파악해 비판과 논쟁의 주제로 삼을 수 있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에는 귀담아들을만한 충고로 가득하다. 사실상 기복..
20대 초반에 나는 니체와 다자이 오사무에 빠져 다소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빛이 들지 않는 구석진 서가에서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질릴 때까지 책을 읽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스스로 책을 사서 읽을 수 있게 된 이후에는 더 다양한 작가에 탐닉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포함된 전쟁 3부작을 읽은 뒤로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책에 빠졌고 우연히 극장에서 코엔 형제의 를 본 뒤에는 코맥 매카시의 번역서를 모조리 사다 읽었다. 라는 영화를 봤을 때도 비슷했다. 나의 존 르 카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끈 이론에 빠져 까지 단숨에 내달렸고 이후 그가 쓴 책이라면 따지지도 않고 집어 들었다. 내 서가의 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브라이언 ..
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기존의 전쟁사를 비판한다. 첫째는 기존의 전쟁사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으로 기술되어 왔다는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만 해도 그렇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참전으로 아시아까지 확전 되기는 했지만 사실상 일부 유럽 국가 + 미국의 전쟁을 세계대전이라 부르다니, 아시아에 사는 작고 노란 나로서는 왠지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든다. 저자는 이른바 중심이라고 간주해온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전쟁사를 기술한다. 아프리카나 중국, 에스파냐 정복 이전의 라틴아메키라, 오스트레일리아 심지어 이순신의 임진왜란까지. 이슬람 전쟁사를 다룰 때도 유럽과 이슬람의 대립에 집중하던 기존의 시선을 거두고 오스만과 페르시아(지금은 다 이슬람 국가지만 페르시아는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조로아스터교..
김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훈의 소설만 쓴다. 이는 독보적 문체로 이어져 대한민국 소설사에 김훈이라는 이름을 깊이 각인시켰지만 그를 오래 읽어온 사람의 입장에선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김훈의 소설에는 캐릭터가 없다. 이순신이 있고 안중근이 있고 우륵이 있고 최명길이 있고 김상헌이 있고 이사부가 있고 어느 초원의 왕이 있고 어느 성의 왕이 나오지만 그들은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한다. 그들은 속내와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몰락할 것처럼 무거운 고독을 어깨에 이고 있으며, 허무와 의미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한다. 매번 똑같은 인물이 비슷한 사건을 일으키는 게 항상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건 아니다. 탐정 소설처럼 강력한 캐릭터가 서사를 이끄는 경우 이는 오히려 독자의 기대를 ..
인삼은 조선 제1의 수출품이었다. 요즘 인삼 하면 다들 재배 인삼을 떠올리지만 당시에는 삼남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인삼을 재배하는 곳이 없었다. 거의 산삼을 캐다 팔았는데, 그 약효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알려져 중국과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18세기 전후 조선의 인삼은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과 함께 동아시아 삼각무역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인삼은 일본의 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그러나 그 삼각무역의 대호황으로 산삼은 씨가 마르게 된다. 상인들은 조선 제1의 수출품을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인삼 재배를 계획한다. 인삼 재배는 많은 자본이 필요한 일이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수확하여 매출로 생산 비용을 메꿀 수 있는 다른 곡물들과 달리 인삼은 최대 6년은 길러야 하는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사용한 언어다. 실험 결과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한 말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는 "우주는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있다." 고 말했다. 세상에 단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만 남기라면 나는 수학을 고를 것이다. 말이나 글에는 늘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숨어 있다. '밥 좀 먹어라!'라는 말의 '밥'은 지금 당장의 한 끼를 의미할 수도, 음식 전체를 뜻하는 걸 수도 있다. 그러나 1, 1, 2, 3, 5, 8, 13으로 이어지는 수열에는(피보나치) 다른 의미가 끼어들 틈이 없다. 심지어 중간의 여러 수를 빼버려도 보는 사람은 그 공백을 완전히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 안에..
은 나영석 PD의 예능에 출연했던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의 에세이다. 내용의 깊이가 남달라 이 책을 그냥 에세이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아마 유구한 예술의 역사를 4개의 스냅숏으로 짧게 풀어내 겸손한 표현을 붙인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다른 진지한 인문서보다도 훨씬 재미있고 참신했다. 1장에서 저자는 '벗은 몸'과 '고전'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미술이란 거칠게 말해 한낱 장식품, 즉 물건에 불과하고 예술가 또한 오늘날처럼 고고한 지위가 아니라 시장에서 자기가 만든 것을 파는 장인에 불과했다. 물론 장인의 정신과 기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예술이 그 자체로 목적이었던 시절은 인류사를 통틀어 매우 짧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고 이전까지의 예술은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