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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_흥미진진한 액션 활극 SF 본문

민트의 세계_흥미진진한 액션 활극 SF

WiredHusky 2019. 2. 17. 10:32





세상에 정체불명의 배터리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배터리. 보통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가진 초능력을 끌어내는 촉매인간. 배터리의 등장과 함께 인류는 모두 초능력자가 됐다. 독심술, 마인드 콘트롤, 염동력 등등 발현되는 능력에 맞춰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간다.


영화 평론가이기도한 듀나가 SF 소설을 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류일줄은 몰랐다. 다소 멜랑콜리한, 로우 텐션의 이야기들이 주류일거라 생각했는데, <민트의 세계>는 나의 편견을 우주 밖으로 쏟아올렸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대단히 흥미진진하다. 타이트한 구성은 그렇게 길지 않은 장편 소설을 단단하게 응축시킨다. 책장을 덮고나면 대단히 훌륭한 일품 점심 요리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갑자기 등장한 배터리, 그리고 보통 사람에서 개성을 가진 초능력자로 거듭난 사람들. 이 메타포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본다. 배터리는 고도로 발달된 현대 기술을, 사람들 모두가 초능력자가 된 현상은 그 기술을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현대 기술 문명 사회를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이런 메타포들을 적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주인공 민트가 청소년이라는 점, 그리고 그녀가 꾸린 집단이 거대 기업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선 익숙한 억압 구조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뭔가 다른 결이 느껴지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 훨씬 가볍고 이야기의 재미에 집중하는 소설이다.


민트는 왜 목숨을 걸고 전쟁을 벌이는 걸까? 표면적으로 그녀는 거대 기업에(LK) 의해 소모성 자원처럼 다뤄지는 초능력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 수 많은 사건들을 기획하고 실행해온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과 추종자를 데리고 우주로 탈출한다. 거기엔 사람뿐만 아니라 초능력을 지닌 다수의 동물들, 그리고 AI로 만든 인공 정신을 이식한 돼지의 뇌까지 포함된다. 이 장면에서 모세의 Exodus와 노아의 방주가 서로 한발짝씩 엇걸은 장면이 연상되긴 하지만 탑승자들의 면면이 딱히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녀가 태운 탑승자들은 오덕 중에서도 진짜 오덕들만 찾아보는 일본 애니를 연상시킨다.


민트가 LK로 부터 탈취한 우주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건조한 광속 우주선이었다. 그들은 그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곳곳을 탐험하며 만물의 지배자가 되려 했다. 이 모든 계획은 민트에 의해 산산조각나고 만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 이 모든 계획이 사실은 인공 정신을 이식한 돼지의 뇌가 꾸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극도의 혐오감에 몸서리 친다. LK는 민트에게 묻는다. 우주 개척의 선구자가 돼지의 뇌와 기타 어줍잖은 동물들이라는 것, 그들이 인간의 선두에 서는 걸 받아들일 수 있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 민트는 이름처럼 쿨하게 대답한다. Why not?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런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특한 소재와 낯설음은 저마다의 상상력 속에서 다채로운 색채와 이미지를 만들어 내겠지만, 그것을 화면에 담는 순간 지네 다리를 단 배추흰나비처럼 끔찍해질 게 뻔하다. 이야기를 구현하기에 현대 영상 기술은 한계가 있고, 듀나의 상상력에 준하는 연출자를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초능력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민트의 세계>는 강추다. 설령 이런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나른한 오후처럼 꿉꿉한 인생에 청량감을 불어넣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그녀의 이름이 괜히 민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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