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의 과학
우리가 지진에 대해 알고 싶은 건 오직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지진이 오나요?
경주와 포항에 들이닥친 규모 5 이상의 두 지진은 대답한다. "네, 옵니다."
2011년 후쿠시마를 집어삼킨 동일본 대지진의 규모는 9.0이었다. 1945년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100만 개와 맞먹는 수준이었으며 1900년 이후 지구에서 발생한 지진 중 네 번째로 강력한 놈이었다. 일본 역사에는 처음으로 기록된 규모였다. 이런 대규모 지진은 주로 일정한 주기를 갖고 도래하는데 동일본 대지진은 869년 이후 1,142년 만에 다시 찾아온 짐승이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단순히 땅을 울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진과 함께 발생한 해일의 최대 파고는 40m에 달했으며 이는 아파트 14층 높이에 달하는 크기였다. 해일은 시속 700km의 속도로 후쿠시마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그곳에 뿌리 박혀 스사노오와 싸워도 지지 않으리라 자부하던 원자력 발전소를 산산조각 냈다.
동일본 대지진을 이렇게 상세히 묘사하는 이유는 이 지진으로 인해 한반도 전체가 진앙지 쪽을 향해 최대 5cm가량 이동했기 때문이다. 경주와 포항의 지진은 우연이 아니었다.
말했듯이 큰 지진은 주기성을 갖는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자기의 역사를 끈질기게 기록해 둔 탓에 우리는 당시에도 굉장히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말은 언제든 그 정도 규모의 지진이 현재의 한반도를 강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고층 건물과 신축 건물들에 대한 내진 설계 기준을 높였고 지진의 근본 원인인 단층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진 피해를 줄이려면 무너지지 않게 대비하는 것 못지않게 대피 경보가 중요하다. 최근엔 툭하면 울리는 휴대폰 경고 문자로 피로감이 쌓였지만 어쨌든 시스템이 동작하고 있다는 건 확인한 셈이니 아주 얻을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내 머릿속에서 경주와 포항의 지진은 이미 잊힌 지 오래 기 때문이다. 아마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면 당시에도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 수 있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재앙에 대비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무관심과 싸워야 한다. 재난 영화의 클리셰로 등장하는 파멸을 예고하는 과학자와 그걸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정부관계자는 결코 남 얘기가 아니다.
지진이 서울을 덮치지 않는 이상 이 무관심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남산타워가 쓰러지고 시그니엘의 허리가 반으로 꺾여야 우리는 비로소 지진의 존재를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