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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WiredHusky 2021. 8. 22. 10:22

달리기를 시작한 건 꽤 오래됐지만 진지하게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화, 목, 토 요일을 정해놓고 계획한 시간 또는 거리만큼 달린다. 화, 목은 주로 인터벌 달리기를 하고 토요일은 중거리 연습이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그냥 20, 25, 30분 시간을 정해놓고 내키는 대로 달리고 있다.

 

음악은 주로 락을 듣는다. 항상 똑같은 건 아닌데, 첫 곡은 웬만하면 반 헤일런의 <Jump>로 시작한다. 빰, 빰, 빰, 빠바 빠밤 빠바바~ 하는 키보드 소리에 발가락 끝에서부터 청량감이 몰려온다. 다음으로 니켈백의 <Burn It to the Ground>가 이어폰을 울리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자신감이 솟으며 나도 모르게 두 발에 힘이 실린다. 록키 O.S.T의 <Going The Distance>와 <Gonna Fly Now>는 풀 죽은 페이스를 살리는데 더할 나위 없는 치료약이다. 레이스 종반에 이 노래가 들리면 아무리 힘들고 진이 빠져도 반짝, 다시 살아난다. 처음엔 킬로미터당 6분이 넘는 속도로 달려도 한 바퀴가 멀고 먼 꿈의 나라 같았지만 지금은 5분 20초대로 6km를 달려도 가뿐하다. 최고 기록은 킬로미터당 5분 6초다.

 

달리기가 좋은 점은 운동복과 신발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잘 만들어진 트랙이나 강변도로가 최고지만 인파가 쏟아지는 길이 아닌 이상 어디서라도 달리기는 가능하다. 이런 걸로 따지면 걷기가 최고 아닌가?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뭐가 더 낫다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 둘을 대체 가능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달리기 전 충분한 스트레칭이 되어 있고 적당량의 과당까지 섭취해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에서 초반 페이스 조절까지 완벽해 3km쯤에서 맞이하는 러너스 하이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설명할 수 없는 황홀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대로 달리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걷기로는 아무리 오래 걸어도 이런 느낌을 받기 어렵다.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서였던가, 어느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극도의 몰입 상태에서 최고의 연주가 나올 때면 종종 '제발 나를 총으로 쏴줘'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이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 것 같다.

 

 

하루키 책 리뷰에 온통 내 얘기만 늘어놓으니 좀 미안하다. 게다가 이건 뭐 올림픽 마라톤 영웅이나 세계적 기록을 보유한 달리기 선수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기니 같잖아도 좀 이해해 주시길. 하루키도 이 책에서 비슷한 고백을 한다. 사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봤자 그나 나나 달리기로 밥을 먹고사는 전문 러너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오랜 시간 꾸준히 하다 보면 결과를 막론하고 나름의 철학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루키는 이 수필에서 그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달리기를 하는 하루키 애독자라면 머나먼 바다 건너에 사는 이 소설가와 보이지 않는 한줄기 끈이 연결됐음을 느낄 것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언제까지 달릴 것이냐 하면 글쎄, 솔직히 별 생각이 없다. 지금 당장은 킬로미터당 4분대의 속도로 10km를 완주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언제까지 달성할 건지,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건지,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해 놓은 건 아니다. 사람들은 달리기처럼 대단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에는 엄청난 목적이 있을 거라 믿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루키는 종종 '달리기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아마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순간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당신도 달려보기 바란다. 운동복과 운동화, 그리고 길.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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