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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PXsociety
앤디 위어가 환장할만하다. 이 한 권만 있으면 우주 장편 드라마 한 편은 후다닥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까지 가기에는 좀 멀지만, 우주 정착 소설을 과학에 근거해 쓰고 싶다면 이 책은 가히 꺼지지 않는 등대가 돼줄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향후 20년 안에 100만 명 규모의 도시를 화성에 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뭘 해왔는지 알고, 스타쉽이 인류의 무지를 비웃듯 화염을 쏟아내며 우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허풍이 아니구나 싶지만, 그래도 우주에서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미디어, 특히 영화가 그리는 우주는 이미 정착지가 대규모로 건설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에서 철근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부어 건물을 짓듯 우주에서도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바이오하면 개잡주 냄새가 심하지만 대한민국의 두 번째 성장 동력은 제약일 가능성이 높다. 신약 개발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산이다. 삼성이 바이오로직스를 시작한 건 수십 년 간 웨이퍼를 갈고닦아 만든 초미세공정 기술 덕분이다. 분자의 크기가 대충 0.1~1nm쯤 하니 트랜지스터를 3nm 간격으로 배치하는 삼성전자의 기술은 가히 분자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분자를 조립하는 일 중에 가장 가치가 높은 건 제약이니, 안 할 수가 없는 거지.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제약의 경계를 넓혔다. 자기 관리의 실패로 여겨지던 비만은 이제 질병으로 인정된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사람에게 "그러게 자가 면역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라고 말하지 않듯 이제 비만인에게 보내던 비난의 눈초리는 세심한 진단으로 변했다. ..
세상에는 집어삼켜야 할 게 너무 많다. 살려면 많은 걸 삼켜야 한다. 음식 얘기가 아니다. 분노, 시기, 질투, 나를 싫어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숨기고 싶은 것들, 없애고 싶은 것들. 먹다 보면 체할 때도 있다. 체하다 보면 삼켰던 게 다시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나온 것들은 들어갈 때보다 더 끔찍해 보인다. 그러니 뭔가를 삼킬 땐 각오해야 한다.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끝까지 소화시켜 없애리라. 이 일이 생각처럼 잘 된다면 사는 데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대로 들고 갈 수도 있고 같이 선 사람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대부분 고통을 불러일으키지만 가끔, 아주 가끔 마음에 쌓인 눈을 녹일 때가 있다...
하루키는 영원히 현재에 머물러 있다. 1949년 생 작가에게 이것은 힘일까 독일까. 하루키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현재로 느껴질까? 그럴 거라고 믿는다. 그의 소설이 전하는 상실, 인과 없는 미끄러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허물을 벗고 변태 하는 경험. 이것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흉터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좋은 점은 이 흉터를 요란하지 않게 여겨서다. 아, 이거 얼마 전에 좀 다쳤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뒤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내리꽂는 태양에 구름은 잔잔히 흐르고 침묵은 길어지지만 어색함이 끼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영혼은 어딘가 틀어져 있다. 원래 향하던 방향에서 조금 어긋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여전히 똑같이 흘러간다. 하루키는 기..
는 의 존 E. 더글라스가 지은 책이다. 보다는 내용이 훨씬 풍부하다. 프로파일링 케이스 스터디로 아주 좋고 범죄 소설을 준비 중이라면 여러모로 참고할 부분이 많다. 여기에 몇 가지 유용한 내용을 정리해 둔다. 피살자의 시체가 담요로 덮여있거나 얼굴이 가려져 있다면 범인은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범죄자라면 성격이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용의자를 면식범으로 한정해 지인이나 이웃을 먼저 의심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소심한 성격일 수 있고 인간관계에 미숙한 외톨이, 주변에선 수줍은 사람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높다.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피해자가 반항을 심하게 했거나 범인을 당황하게 만들어 벌어진 우발적 살인도 가정해야 한다. 범죄 수단도 아주 중요한 단서..
의 농담 30%에 시의성을 70% 섞어 을 만들어냈고 한겨레가 골랐다. 적절하다는 말은 참으로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김홍 바모스! 나는 같은 소설을 좋아했다. 뼈대를 생각하기보다는 펀치 라인에 집중하는 이야기. 모르긴 몰라도 김홍 소설의 상당수는 단 1개의 문장에서 시작된 것들이 꽤 있을 것이다. 문장이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문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 이런 류의 소설은 확실히 장편에 취약하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미학자가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예술은 없어져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사라지는 것이다.' 펀치 라인이 너무 많으면 라인이 더 이상 펀치의 역할을 못한다. 농담은 길면 지루해진다. 그럼에도 이걸로 장편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던 사람과 작..
정해연 작가의 소설은 편차가 심해 솔직히 좀 화가 난다. 첫 문장은 괜찮았는데 갈수록 이야기의 비약이 도드라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문제가 되는 놈들이 갑자기 죽거나 죽이면 다 마무리되고 뭔가 아쉽다 생각하면 에필로그까지 등장하는데, 이러면 좀 당황스럽다. 에필로그가 꼭 필요했다면 이야기 안에 녹이면 됐을 텐데... 정해연 작가의 책은 세 번째고 세 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가 99.99999999%의 지분을 차지한다. 셋 중 가장 짜임새가 있다. 아니 가장이라는 말보다는 유일하다는 말이 더 맞다. 는 단편선이다. 1.6만 자로 제단 한 단편들이 아니었다는 점은 좋았다. 근데 실린 작품이 4개에 머물다 보니 조마조마한 마음이랄까, 다음 것도 이러면 2개밖에 안 남는데... 원인이 ..
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이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 아키텍처가 처음 만든 버전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세상이 잘 돌아갈 거라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인간은 모두 죽어버렸다. 그렇게 몇 번의 디버깅을 거쳐 아키텍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완전히 똑같은 세계를 만들었다. 아키텍처는 네오에게 말한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현실을 인지한다'라고. 인간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고통을 지배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중세 시대에 성행했던 고문은 고통을 야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는 전근대, 대한민국에서는 현대에도 널리 사용됐다. 군부독재 시기 이들은 고문기술자 혹은 고문전문가로 불리며 일종의 장인으로 대우받았다. 한국..
마법을 쓰는 셜록 홈즈 이야기다. 물론 홈즈가 쓰는 건 아니다. 영원한 그의 조수 왓슨이 마술사로 등장한다. 로드 다아시와 마스터 숀 오로클린. 셜록과 왓슨을 빼다 박은 콤비가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방법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작가의 수만큼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세계관을 창조하는 것 같다. 영화 는 제목부터 구린내가 진동하고 연출 수준이 심형래와 자웅을 겨룰 정도지만 그 세계관의 크기와 매력은 D-War가 넘볼 수 없다. 캐릭터는 죽고 에피소드는 망할 수 있어도 세계는 영원하다. 기다리면 과 같은 게 나오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것도 세계다. 포와로나 홈즈의 무게를 이기고 고개를 돌리면 그 아래 놓인 땅이 보인다. 두 작가는 그런 살인과 그런 살인..
오강남 교수의 책을 처음 읽은 건 20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골수 감리교인으로 매우 열심히 교회를 나가는 건 당연하고 청년부 활동까지 수행하던 신앙인이었다. 그렇게 신실한 사람이 비교종교학자의 책을, 그것도 라는 제목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의 교양 수업이었다. '세계 종교와 철학'. 이 과목에서 우리 조는 '악마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맡았다. 때마침 개인 미디어 붐이 일어 촬영 장비가 꽤 흔했던 탓에 나는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의 민낯을 샅샅이 밝힐 포부를 가득 담고. 그 성전의 결과를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개신교의 종교 교육에 완전히 실망했다. 아니, 수치심이 들었다. 그때의 경험은 야훼가 알라와 같은 신인줄도 모르고 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