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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쿨_잭 리처 본문
끈질긴 장르 소설 탐색을 끝내고 나는 두 명의 작가를 얻었다. 해리 보슈 시리즈의 마이클 코넬리와 이 책 <나이트 스쿨>의 작가 리 차일드. 리 차일드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잭 리처'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최근 몇년 동안 헐리웃에서 동명의 시리즈에 쳐바른 똥칠 때문이다.
영화는 핵망이었다. 190센티가 넘는 거구의 헌병대 소령 잭 리처를 사이언톨로지의 난쟁이 톰이 연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두 편을 모두 본 나로서는 잭 리처라는 이름에 경외심을 가져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으려 해도 내 눈엔 자꾸 난쟁이 톰의 모습이 밟혔던 것이다.
이런 편견을 깨준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주제로 세계의 내노라 하는 작가들이 단편 소설을 써서 엮은 <빛과 그림자>였다.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리 차일드라는 이름과 만나는데, 이 책에 실린 수 많은 단편들 중에서도 그의 작품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이때서야 나는 비로소 언젠가 리 차일드의 작품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이 바로 <나이트 스쿨>.
<나이트 스쿨>은 '그 미국인이 1억달러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찾아 CIA, FBI, 미 육군 헌병대가 합동 작전을 펼치는 빅스케일 추리 소설이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잭 리처의 육체적 활약은 떨어진다고 하는데 시리즈를 처음으로 읽어본 나에겐 그런 것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방향은 한참이나 멀지만 차포 떼고 단순히 말하면 존 르 카레의 미국식 캐쥬얼 버전이랄까? 저 단순한 메시지 하나에서 독일과 미국을 아우르는 밀도있는 추리 서사가 펼쳐진다는 건 실로 이 작가가 플롯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짜넣는 능력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감명 받은건 <나이트 스쿨>이 전체 546페이지에 달하는 책이고 400페이지가 넘도록 뚜렷한 액션이 보이지 않는데도 지루할 새가 없다는 것이다. 1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테러 무기는 뭘까? 리 차일드는 낚시 바늘에 이 단순한 미끼하나만을 건채 독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그는 독자를 데리고 같은 곳을 맴맴도는 미로로 인도하는데 지쳐 쓰러질려고 할 찰나 이야기는 빛나는 실마리를 잡고 벽을 넘어 뛰어오른다. 이제 바로 다음이 목적지라는 기대는 우리로 하여금 같은 미로를 맴맴 도는 행군을 또다시 견디게 한다. 이 책을 펼친 순간 이 이야기를 거부하는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장르 소설은 이러쿵 저러쿵해도 결국 이 힘이다. 바로 뒷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가 써있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 페이지를 뭉텅이로 넘겨 결말을 미리 보지 않으면 호기심이 내뿜는 연기로 머리가 간질간질하고 호흡이 빨라져 참을 수 없게 되는 것. 나도 몇번이나 그 유혹에 맞서 싸워야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그 맛을 아껴먹었고 허기와 포만이 기분 좋게 반복되는 시간을 즐기며 부드럽게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권한다. 첫째, 영화 잭 리처 시리즈에 큰 실망을 한 사람. 둘째, 존 르 카레의 무게와 비관을 떠나 잠시 머리를 비우고 싶은 사람. <나이트 스쿨>은 전형적인 미국 영웅과 헐리웃 식 해피엔딩의 규범을 따르지만 그런 걸로 치부하기엔 이야기가 가진 힘이 참으로 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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