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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WiredHusky 2024. 3. 3. 09:45

인간이 이야기에 빠지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 인간이 둘셋씩 모여 언어가 발달하기 시작하자 이는 곧 이야기로 발전했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예기치 못한 자연현상, 그러니까 어제까지 안전하고, 따뜻하고,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던 동굴을 몇 시간 만에 수몰시키는 비바람의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야 했다.

 

미지는 곧 공포였다.

 

캄캄한 밤, 자꾸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실은 유리에 부딪힌 나뭇가지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안도하게 된다. 동굴에 불을 피우고 모여 살았던 인간들은 지역과 종을 막론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공유했다. 세상에 대한 설명과 근거. 공포를 제거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무엇.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의 근원이다.

 

세상이 왜 그렇게 동작하는지 잘 설명하는 이야기는 질서를 가져다준다. 질서는 더 많은 인간을 모이게 하고, 그 인간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질서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과 따르는 사람 사이의 위계를 형성한다. 질서는 곧 권력, 다른 말로 하면 이야기가 곧 권력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란 가장 널리 믿어지는 이야기를 전하는 자다. 질서를 만드는 자에게는 이리저리 변형되고, 너도 나도 신이 되는 고대의 이야기가 가진 약점이 또렷이 보였을 것이다. 권력자는 좀 더 견고하고, 독점적이며, 관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원했다. 이로써 종교의 시대가 찾아왔다.

 

자연 모두에 영혼이 있으며, 그들 모두를 신적 존재로 만들었던 신화가 종교로 탈바꿈하는 건 필연적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신화와 비슷한 다신론을 믿는 민족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한 건 전부 유일신을 섬기는 민족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중국과 인도인데 중국은 유교가, 인도는 다른 종교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신분제도가 그 역할을 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종교라는 이야기에도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야기 사이에 불일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항상 의문인 점은 도대체 무엇이 먼저냐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지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 걸까,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가 지어진 걸까? 아마도 둘은 거의 동시에 발생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균열을 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에 반응하고, 살을 붙이고 그 이야기가 새로운 사람을 탄생시킨다. 고대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저주받은 예언을 피하기 위해 주체적인 선택을 거듭하지만 결국에는 그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이것은 운명론이고 애초부터 정해진 것이었으며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다르다. 그는 처음으로 선택 앞에 고뇌를 바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은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가른다는 이야기를 전파한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라는 이야기, 다른 말로는 르네상스, 또 다른 말로는 근대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이용하면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까지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세상이 고작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더 놀라운 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규범, 원칙, 윤리, 도덕은 모두 인간이 만든 이야기다. 이것들은 인간을 꼼짝달싹할 수 없게 옭아맨다. 인간은 이야기라는 거미줄에 사로잡힌 피식자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이 거미줄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며, 우리가 언제든지 바꿔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야기'로 쓰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고쳐 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비밀이자 이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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