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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_를 모욕하는 법

WiredHusky 2016. 1. 31. 10:24






베르나르 키리니는 무성의하게 소설을 끝낼 때가 많다. 알렉산대 대왕의 매듭! 펼쳐 놓은 이야기가 수습이 안 될 땐 도마뱀 처럼 뚝 꼬리를 잘라 버린다. 아이디어가 참신할 수록, 독특할 수록, 황당할 수록 이럴 확률은 늘어난다. 원래 반짝 반짝 빛나는 원석은 그 가능성에 비례해 가공의 품도 늘어난다. 때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도리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것. 그러니 명심하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가능성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를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도 대단한 아이디어를 씹다 뱉은 껌처럼 퉤퉤 내다버린다는 점에선 <육식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 남자는 아이디어가 무한히 샘 솟는 맷돌 하나를 책상 서랍에 숨겨둔 것 같다. 쓰고 버려도 넘칠 만큼 아이디어가 폭주하는 것이다. 애써 이야기를 다듬거나 장편으로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기엔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동안에도 아이디어가 터져나와 집필을 방해할 정도다. 가지에 가지를 치는 생각은 어느새 거대한 나무가 되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쓰던 걸 얼른 끝내버리고 이 새로운 나무에 집중해야 한다. 이 때 소설가는 일종의 벌목꾼이다. 거대한 나무를 베어 종이 안에 담지 않으면 뇌는 무성한 나무들에 완전히 잠식당하고 만다. 의식이 숲에서 길을 잃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대변은 여기까지 하자. 솔직히 <육식 이야기>는 별로다. 씹다 뱉은 껌이라도 마다않고 두 번 세 번 곱씹은 이유는 생각의 꼬리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수풀 사이로 살랑 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보면 쫓아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침내 꼬리를 잡아 몸통을 끌어낸 순간 탄식의 한숨을 내쉴지라도 괜찮다. 그 꼬리를 보고 만진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육식 이야기>는 꼬리도 별로고 몸통은 더 별로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더 미약하리라! 좋은 아이디어를 모두 데뷔작에 쏟아 부었던 걸까? 아무튼 안타깝다. 훌륭한 소설가의 졸작을 읽는 건 본인 못지 않게 독자까지 무참하게 만든다는 걸 알아두시길. 이별의 아픔을 알아버린 사람이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 머뭇거리듯이 베르나라 키리니의 세 번째 책을 드는 게 망설여진다.


그나마 괜찮았던 작품이 뭐였는지 생각해 보자. <뒤 섞인 사랑>, <수첩> 그리고... 그리고 모르겠다. 나에게 세례를 준 책은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다. 아니 <육식 이야기>가 주인공인 글에서 왜 자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얘기를 하는가?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아주 중요한 아이디어 하나를 얻었다. 나를 실망시킨 <육식 이야기>를 모욕하는 방법 말이다. 어떻게? 제목을 그대로 놔둔 채 끊임없이 <첫 문장 못 쓰는 남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조연이 주연을 대체한다. 속편의 주인공이 시작하자마자 전 편의 주인공에게 목숨을 잃는다.


이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당신은 무성의하게 끝낸 소설을 읽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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