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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정벌

WiredHusky 2024. 5. 5. 12:43

하나라를 정벌한 건 동이족이었다. 동쪽의 활을 쏘는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 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라는 신화에서 시작하여 요, 순, 우, 탕이라는 전설의 시대로 접어드는데, '우'가 세운 나라가 '하', '탕'이 세운 나라가 '상'이다. 탕은 동이족이었고, 동이는 주로 수로를 이용한 무역으로 먹고살았다. 동이는 중국 땅에 최초의 왕조를 세운 사람들이자 상인으로 기록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요, 순은 그 존재가 의심스러운 인물이고 우는 긴가민가하지만 탕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우는 요순시대에 대홍수를 관리한 곤의 아들이다. 이른바 '치수'라 부르는 그 사업에서 곤이 크게 실패하자 아들 우가 이어받아 대업을 완성한다. 순은 요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자신에게 제위를 양보한 것처럼 당시에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던 우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준다. 이것이 바로 전설과 사실이 묘하게 섞인 '하나라'의 시작이다.

 

모든 왕조가 그렇듯 무려 '대우'로 불렸던 반신의 왕이 세운 나라에도 시간이 갈수록 망조가 들기 시작한다. 이른바 백성을 괴롭히는 나쁜 왕이 나타나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정의의 사도가 역성혁명을 시도한다는 이야기. 모든 역사 기술이 하나같이 똑같아서 어쩌면 이는 현 정권의 승리자들이 전 정권을 무너뜨린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어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망한 하나라도 그 전형을 피할 수는 없었다.

 

'상탕'이라는 성군이 나타나 포악한 하나라의 군주 '걸'을 무찌르고 상나라를 세운다.

 

하나라에는 청동기 문명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었고 국가의 권력을 두고 이 청동기 제작자들과 왕가가 대립했던 것 같다. 저자는 이 청동기 제작 집단이 탕이 이끄는 외래 부족을 끌어들여 하나라를 멸망시켰다고 가정한다. 하나라 시절 청동기는 아주 극비리에 지엽적으로 제작되었다. 돌을 갈아 썼던 당시로선 거의 전설의 무기급으로 취급되었을 청동기가 백성에 손에 자유롭게 들어갔을 때 느낄 왕가의 우려를 생각해 보면 이는 꽤 타당한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동 기술자들의 마음이 어찌 같을 수 있었을까? 상나라 시대에 청동기가 완전히 위세를 떨친 것을 보면 저자의 가정에는 타당한 면이 있어 보인다.

 

상나라는 청동기를 적극 활용했다. 그들의 역사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데 이 무기를 들고 주변 부족들을 점령해 나간다. 최초의 식민지라 볼 수 있는 제후국을 설치하여 영향권을 넓혔고 대규모의 왕궁을 세웠으며 용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초대규모 창고가 지어졌다. 이는 상나라의 힘과 통제력을 보여주는 예시다. 이러한 정복 사업은 훗날 개발되는 마차에 의해 유지, 가속된다.

 

 

하, 상이라는 고대 국가와 이후 중국 국가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인신공양제사라 볼 수 있다. 그들은 중요한 건물을 짓거나 누군가의 무덤을 만들 때 많은 수의 사람을 죽여 제사에 바치거나 순장을 했다. 그 유적지들이 대량으로 발굴된 곳을 '은허'라 부르는데 은나라의 터, 은나라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는 상나라의 반경이라는 왕이 천도한 곳으로 여기서 출토된 유적에서 처음으로 '은'이라는 이름이 등장해 사람들이 '은나라'로 불렀으나, 이후 상왕조의 유적들이 차례대로 발굴되면서 '은'이 사실은 '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중국의 고대 국가를 일컬을 때 하, 은, 주라 했지 하, 상, 주는 없었다. 근래에는 하, 은상, 주로 많이 칭하는 듯하다.

 

청동 위에 건립한 이 패국도 결국에는 하나라 '걸'의 운명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은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여 '제신'이라 부를 정도였으나 쿠데타에 성공한 주나라 사람들이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위해 그에게 '주'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주란, '의를 해치고 선을 덜어낸 자'라는 뜻이다. 주왕의 포악함을 대표하는 말이 바로 저 유명한 '주지육림'이다. 그리고 이 악독한 왕을 무찌른 이야기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적 있는 '봉신연의'다.

 

주족의 우두머리였던 주발은 상나라를 멸한 뒤 주나라를 세운다. 주발의 시호는 무왕이다. 상나라 정벌의 씨앗은 무왕이 아닌 그의 아버지 문왕 때 시작되는데 이 문왕이 팔괘를 해석하는 법칙을 세운 '역경'의 저자다. 주나라는 끔찍한 인신공양제사를 폐지하기 위해 상나라의 귀족들을 여러 땅으로 흩어 보내고 은허를 폐허로 만든다. 이로써 중화문명은 완전히 새로운 지평으로 접어들었으며 이후 '공자'에 의해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일컬어지면서 주나라는 '유학'의 이상향이 된다.

 

<상나라 정벌>은 이 주나라가 상나라의 제사에 쓰일 인간을 대신 사냥하는 부족에 불과했으며, 상나라의 역사를 그토록 철저하게 파괴한 이유도 '인도적 차원' 뿐만이 아니라 자기들의 어두운 역사를 숨기기 위해서 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나라 무왕에게는 주읍이라는(백읍고) 형이 있었다. 주읍은 문왕이 당시 제후 중 하나였던 숭후호의 탄핵을 받아 몇 년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로비를 벌였던 인물로 이 과정에서 주왕의 눈에 들어 그의 마차를 모는 측근이 된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주왕의 패악을 드러내기 위해 그가 주읍을 죽여 탕으로 끓인 뒤 이를 문왕에게 먹였다는 '역사'를 쓰는데, 저자는 이를 전형적인 유교적 '소설'로 치부한다.

 

문왕과 무왕이, 아들과 형의 살점을 뜯어먹은 것은 상나라의 정상적 제의 과정 중 하나였다. 이 의례는 주족이 완전히 상나라에 받아들여졌으며, 그 체계 안에서 존속을 보장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공적 서사와는 별개로, 두 사람에게 이는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주나라가 벼른 복수의 칼날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생사가 보장되어 완전한 안정을 찾았을 때, 비로소 벼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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