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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본문
마음의 이물감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가장 탁월한 작가. 나는 김애란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7편의 소설을 담았다. 주제는 자산이다. 구체적으로는 부동산이다. 김애란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 단어의 조합이 얼마나 낯선지 느낄 것이다. 우주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도 김애란이 네이버 부동산을 뒤지고 호갱노노의 주민 댓글을 찾아보는 모습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작가가 감히 부동산을 주제로 소설을 썼다. 결국은 관찰력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 멈췄다면 이 작가는 사회학자가 됐을 것이다. 팔자가 사나운 김애란은 예민한 관찰력과 함께 쓰기의 저주를 받았고, 소설가라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그녀의 부동산에 축복이 있기를.
자산의 차이가 계급의 차이로 변해가는 세상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는 막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흔히 중간이 사라진 시대라고 한다. 사회의 모든 분야는 양극화됐고 우리가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누릴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장 뼈아픈 배신을 하는 중이다. 주거나 의복 교육, 섭식에 이르기까지. 양극화는 양쪽에 속한 사람들에게 각각 부스터를 달아주는 데 그 방향은 당연히 반대다. 잘 먹어야 잘 사는 법이거늘, 잘 살아야 잘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벌어지는 속도를 막을 방법이 없다. 중간은 그렇게 완전히 찢어졌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대한민국은 그것을 부동산이 결정했다.
같은 나이에 비슷한 직장을 다니며 비슷하게 살았는데 눈을 뜨고 보니 한 사람은 전세를 전전하고 다른 사람은 수십억짜리 콘크리트 상자를 갖게 됐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싶어도 막상 전세 만료일이 다가오면 그 설움이 차가워 온몸이 오그라든다. 어렵게 새집을 구해 이사를 마치고 나서도 불안은 씻기지 않는다. 제 때에 부동산을 사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하루하루 조금씩 추락한다. 부동산의 상승 속도를 월급의 다리로는 쫓아갈 수 없다. 그때 살걸. 무리를 해서라도 살 걸. 할 수 있는 건 후회뿐이지만 후회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마음을 갉아먹을 뿐이다.

추락한 중간계의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진통제는 스스로를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잘못된 건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약효가 오래가지 않는 건 '대출 상상력'이나 '금융 감수성'이 필수 능력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정직했는데도 자산을 불리지 못했다면 그건 성실하고 정직한 게 아니라 멍청하고 무능한 것이다. 미쳐버린 세상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도덕적 우월감도 지인의 아파트가 수억이 올랐다는 이야기에 박살이 나고 만다. 세 번째 소설 <좋은 이웃>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공부방을 운영하는 '나'는 몸이 불편한 시우를 위해 적은 돈을 받고도 멀리 방문 교육을 간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는 시우를 돌볼 여력이 없는데 시우가 워낙 '나'를 따르는 탓에 사정사정을 한 것이다. 거리가 조금 되고, 방문까지 하는데도 나는 돈을 더 받지 않았다. 이것을 일종의 봉사로 여겼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 불쌍한 아이를 보살피는 일. 그러던 어느 날 시우의 어머니가 장사를 일찍 마치고 돌아와 나를 찾는다.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자신의 과외비를 낼 형편이 안 돼 그만해야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는 돈을 받지 않고도 이 일을 할 생각이었다. 시우는 불쌍한 아이니까. 어머니가 말한다.
'저희 요 앞 아파트로 이사하게 됐어요.'
요 앞의 아파트라면 아마 신축일 것이다.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잘 됐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나의 마음은 휑하고 허전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 남편은 말한다.
'그야 당연히 이 집 계약할 때지.'
조금 무리해서라도 사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전세로 들어온 그 집. 이사를 준비하며 나는 오래된 책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낡은 책장을 넘겨보았다. 거기에는 이십여 년 전 남편이 연필로 밑줄을 그어놓은 문장이 보였다.
'저희들도 난쟁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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