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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은 말한다

WiredHusky 2025. 11. 2. 09:12

죽음으로 삶을 유추하는 건 멋진 일이다. 죽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경우도 많으니 이렇게 저렇게 더하고 빼볼 여지가 있다.

 

법의학이 대중의 눈에 들어온 데는 단연코 드라마의 힘이 컸다. 그 대장은 뭐니 뭐니 해도 제리 뽈록 하이머의 <CSI>다. CSI는 발음이 시원시원하고 입에 잘 붙어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을 것 같지만 풀어보면 Crime Scene Investigation에 불과하다. 번역하면 범죄 현장 조사. 허무하리만치 군더더기가 없는 말이다.

 

당연하지만 드라마 <CSI>와 실제 CSI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 세계에서는 터무니없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 반대? 예컨대 드라마에서는 절대 그리지 않을 황당한 사건이 현실 세계에서는 버젓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현실은 원래 이야기보다 논리가 부족하고 해괴망측한 법이다. 현실은 그 자체가 존재의 근거이므로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이다.

 

<죽은 자들은 말한다>는 후자를 읽는 재미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절대 나올 리 없는 에피소드를 듣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의 성공률은 의외로 낮다고 한다. 준비 부족, 생에 대한 본능적 집착 등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래서 자살에 성공하는 사람은 그 짓을 여러 번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시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루, 몇 시간, 몇 분 동안 수차례 시도한다는 말이다. 목을 맸는데 죽지 않고 눈을 떴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에게 그 짓을 다시 시도할 용기가 남아있을까? 심지어 총을 쐈는데도 살아남는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은 죽기 위해 자신의 몸에 여러 발의 총알을 꽂아 넣어야 했다. 맨 정신으로, 고도로 집중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죽어야 해,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솔직히 이 책을 아주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놀라운 이야기 Y>나 <사건반장>,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의 놀람과 흥미를 담고 있다. 물론 이런 글을 쓰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피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 상처를 보며 형사가 말했다.

 

- 총상일까요?

- 현장에서 수거한 탄피들이 있었나요?

- 없었습니다.

- 몸 안에 박혀 있던 탄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검의는 시체를 돌려 형사에게 등을 보여줬다. 잘생긴 경주마의 엉덩이처럼 매끈한 모습이었다.

 

총을 쐈다면 범인은 정말로 깔끔한 놈이다. 현장에 떨어진 탄피를 모조리 수거하고 죽은 놈의 살 속까지 쑤셔 탄두를 챙긴 셈이니까. 살해 도구는 총이 아니었다. 형사의 머릿속엔 문득 그녀의 집에 있던 얼음송곳이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소설 쓰기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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