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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사회_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

WiredHusky 2016. 2. 28. 11:08







오늘날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근대 사회의 출현 이후 그들은 많은 분야에 전문가라는 깃발을 걸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도와왔다. 그들은 일상에 바쁜 우리가 좀처럼 관심을 두기 어려운, 그러나 아주 중요한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존재였고 이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 우리 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 거대한 성을 지었고 견고한 담합을 이뤄냈다. 그들은 서로의 실수를 눈감아줬고 막대한 지식 격차를 이용해 우리를 눈 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여전히 이타심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을 대하는지 의심해 봐야 할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필연적으로 고착화 된다. 전문가는 자신에 대한 일반인의 의존이 항구적이며 맹목적이길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 무지한 존재로 남길 원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그들의 세계를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험 전문가는 맞춤이라는 명목으로 도저히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갈기 갈기 상품을 쪼개며 의사와 법관들은 모국어로 쓰여도 해석할 수 없는 전문 용어로 자신의 보고서를 채운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백기 투항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밥 그릇을 넘보지 말라고 협박하는 건 하수의 방식이다. 절대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것. 침범의 의지를 '스스로' 꺽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수성 전략이다.


전문가 사회의 거래는 오직 상품과 화폐로만 구성된다. 이 말은 우리가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반드시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뭐 이리 당연한 말을 하냐고? 의사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애를 낳을 땐 산파로 소문난 동네 아줌마의 도움을 받았고 감기에 걸리면 들과 산에서 구한 약초로 병을 다스렸다. 그런데 요즘은? 의사가 진찰을 하고 주사를 놓고 처방전을 써준다. 과거엔 상호 부조나(애 잘 받는 아줌마) 자연의 혜택(약초)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진료비와 주사비와 약 값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돈 없이는 생존권도 없다. 현대 서비스 사회에서 빈부의 차는 사치품을 더 살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느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 좋은 주거 환경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러니까 삶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누릴 수 있느냐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흐름을 되돌릴 만한 힘은 없다. 한 때는 우리도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맹목적으로 전문가에게 위임한 결과 이제는 완전히 불구가 됐고 이로 인해 더더욱 전문가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난 전문가들은 이제 필요 자체를 정의함으로써 권력을 영속화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반려견 행동 전문가와 청소, 정리, 이사 전문가와 헬스 케어 전문가, 입시 상담 전문가, 스트레스 관리 전문가, 라떼 아트 전문가, 네일 아트 전문가, 레저와 여행 추천 전문가를 필요로 했는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너무 바보가 되어 정리도 청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심지어 내가 뭘 먹어야 하는지, 아니 뭘 먹고 싶은지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인간이 된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우리 대신 우리의 필요를 정의하며 나아가 그 필요를 교묘하게 욕구로 바꿔 놓음으로써 우리가 마치 처음부터 그것을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순전한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날 잘 나가는 상품들이 소비자의 필요(needs)에 호소하지만 더 위대한 사치품들은 우리의 욕망(wants)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나 전문가 사회의 가장 끔찍한 점은 그것이 가진 정치적 함의다. "전문 서비스의 일방적 공급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반민주적인 지도자를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준비시키는 일이 훨씬 용이하게 마련이다."(p.113).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가들의 첫 번째 임무는 복잡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정의해 그것으로부터 일반인들의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사안을 직접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전문가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 함으로써 자발적인 노예가 된다. 그리고 노예가 된 자신을 이끌어줄 강력한 독재자를 원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공유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알게 된 21세기 선진 시민에게 이 같은 상황은 얼핏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전 세계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정치 현실이다. 이 글을 읽는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2007년 12월 19일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경제 전문가를 대통령으로 뽑은 적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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