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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전_클리셰의 괴물 본문
미야베 미유키를 너무 믿었나보다. 675페이지 짜리 책인데 볼거리는 많지 않다. 평생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다는 괴물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너무 아끼는 건 이토록 다루기가 힘든가 보다. 사랑이란 것도 적당히 평등한 관계에서 지지고 볶고 엎치락 뒤치락 해야 아름답지 한 사람이 신을 섬기듯 조심 조심 숭배해선 재밌는 사랑이 될 리가 없다.
<괴수전>은 전개가 느리다. 이제나 저제나 노심초사 괴물의 등장을 기다리는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아 이게 그거야?"라고 탄식을 할 정도로 맥 빠지게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이게 서사 기술이 가진 근본적 한계 같기도 한데, 실제로 뭔가를 자세히 묘사하면 할수록 오히려 신비감이 떨어지면서 밋밋한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영화가 정말 부럽다. 몇 페이지에 걸쳐 치밀하게 묘사해야 할 대상을 풀샷과 클로즈업 만으로도 끝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미지의 대상을 묘사할 땐 그 모습보다는 행동을 기술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예컨대 괴물이 청와대를 밟아 무너뜨린 뒤 공무원을 하나 씩 하나 씩 집어 씹어 먹었고 꼬리로 바닥을 내리 쳐 지진을 일으켰다고 하면 이 괴물의 크기와 신체 구조 그리고 그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해 나갈 것이다. 신기한 건 그 희끗희끗한 상상이 오히려 더 생생할 수 있다는 사실.
또 하나, <괴수전>은 밋밋하다. 일본 굴지의 미스테리 작가답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를 여럿 등장시키길래 치밀하게 얽힌 이야기가 전개되겠구나 싶었는데 글쎄 이게 다 맥거핀이었다. 종장에 이르러 몇몇 반전이 있긴 하나 비밀 캐릭터들이 사실은 별 거 없었음을 무마하기 위한 시도로 느껴져 그닥 충격적이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소설은 베테랑 작가의 클리셰 모음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괴물을 두고 벌이는 갈등, 종장에 이르러 그것이 처리되는 방식은 어디서 한 번쯤은 본듯한 친숙한 전개임이 분명하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더 많이 읽어봐야 알겠지만, 작품 수로는 일 이 위를 다툴 정도로 많은 수를 발표하는 작가임을 고려할 때, 어쩌면 클리셰들을 완성도 있게 조합해 내는 능력이 그 왕성한 창작욕의 비밀이 아닌가 싶다. 전반적으로 <괴수전>은 보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재미를, 뭔가 색다를 충격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2% 부족할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 장, 사건의 뒷 이야기를 담은 두 페이지가 충격을 던져준다. 나는 그 두 페이지를 읽는 순간 얼어 붙고 말았다. 수 십 번이고 필사해 품에 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기막힌 이야기. 674페이지에서 675페이지, 딱 두 페이지에 걸쳐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도시 전설' 류의 클리셰를 똑 닮아 있지만 그 정수라 불러도 아깝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미야베 미유키로부터 이 두 페이지를 훔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의 <괴수전>에서 이 두페이지를 잘라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싶다.
그래서 후세에 이 글을 쓴 사람이 나인줄 알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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