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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당나라 역사 (3)
deadPXsociety

이융기는 젊은 시절 꽤 배포가 있었다. 좋게 봐줘도 황위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연이 멀다고 할 수밖에 없는 그가 역사의 무대로 오르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능한 위 황후와 안락공주 때문이었다. 본디 큰 권력이 사라지고 나면 그 공백의 크기를 메우기가 쉬운 게 아니다. 천하에 인재가 아무리 많아도 무측천에 비할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을텐데 하물며 그 좁디좁은 황가의 인력풀에서는 오죽했겠는가. 그래서 이 여황의 자리는 덕도 능력도 없는 자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위 황후는 무측천을 밀어내고 황위에 오른 중종의 아내였고 안락공주는 그녀의 딸이었다. 두 사람은 생각했다. 나라고 왜 여황이 될 수 없겠는가? 선례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준다. 이 꿈은 특히 무능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더 크게 자란다. 중종이 천명..

무측천이다. 기나 긴 중국 역사에 기록될만한 여자가 어찌 한 둘이겠냐마는, 그 수많은 여인들 중 오직 무측천만이 황제에 등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측천이다. 여황 폐하다. 본디 무측천은 태종 이세민의 보잘것없는 후궁에 불과했다. 당나라 시대의 후궁 제도는 1후, 4비, 9빈, 27세부, 81어처로 나뉘는데 당연히 후가 으뜸이고 비, 빈, 세부, 어처 순으로 지위가 나뉜다. 27세부는 다시 첩여, 미인, 재인의 세 등급으로 나뉘고 각 등급당 9명이 배정된다. 무측천은 이중 정 5품 재인으로 27세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위의 후궁이었다. 뽐낼 거라고는 그저 81명으로 구성된 어처보다는 지위가 높았다는 것. 이랬던 그녀가 무측천이 될 수 ..

대제국 후한이 멸망하고 그 유명한 위촉오의 짧은 삼국시대가 끝난 뒤 중국 대륙은 이른바 5호 16국이라는 대혼란의 시대를 맞이한다. 이 난세에는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었고 그 운명은 채 1~2년이 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5호 16국은 점차 북위, 북제, 북주로 이어지는 이민족들의 북조와 송, 제, 양, 진으로 이어지는 한족의 남조로 양분되어 남북조 시대를 이루나 혼란의 400년을 마치고 진정한 통일 왕조를 이룩한 건 바로 북주를 계승한 수나라였다. 그러나 이 수나라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중국의 남과 북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하느라 백성의 원성을 샀고 결정적으로 고구려 원정에서 대패해 국운이 소멸한다. 이 수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또 다른 선비족(오랑캐) 출신인 당고조 이연이었다. 이연은 수나라를 끝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