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_착취보다 무서운 건 무용함이다. 본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_착취보다 무서운 건 무용함이다.

WiredHusky 2018. 12. 23. 10:46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상에서 유일한 생물종으로 정의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이 겨울 정도였다. 그들은 행여나 빼앗길 키워드를 선점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생각하는 사람, 놀이하는 사람, 웃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호모 어쩌구 저쩌구 기타 등등. 하지만 유발 하라리만큼 충격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하라리는,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다른 무엇도 아닌 이야기를 창조하고 믿는 능력이었다고 말한다. 국가, 민족, 화폐, 법인. 이는 모두 허구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반만년간 역사를 이어온 단군의 후예라는 사실을 믿으며 태극기 앞에 자긍심을 느끼고,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돈으로(혹은 계좌에 새겨진 몇 자리 숫자로) 실물을 사고 팔고, 세계 곳곳에 자리잡은 우리 기업의 활약상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라리는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 대규모 협력이 가능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 민족의 이야기가 다른 민족의 이야기보다 중요하다는 편향이 일어났을 때, 그것은 늘 재앙으로 번지곤 했다. 이와같은 이유로 하라리는, 이야기가 결코 21세기의 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 또한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완전히 규모가 다른 새로운 이야기의 등장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한두개의 국가, 한두개의 민족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바야흐로 전인류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대응이 필요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인류는 모두 하나'라는 전지구적 이야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그동안 고수해왔던 편협한 민족, 국가 중심의 이야기에서 인류의 이야기로 진화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 이야기는 그 특성상 결국 분열할 수 밖에 없지만 다행히 인류는 단일한 종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과거 호모 사피엔스가 같은 종의 유인원들을 잔인하게 멸종시킨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 새로운 이야기의 창조자들이 우리 모두를 같은 인류로 인정해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자유의 범람이 인류에게 문명 발달의 혜택을 골고루 나눠준 시기는 아주 짧았다. 그것은 치열한 체제 경쟁의 시기에(냉전) 나타난 아주 이례적인 혜택에 불과했다. 하라리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갈등을 두 가지 윤리 체계의 갈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며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이는 사실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두 가지 상이한 시스템 간의 갈등입니다. 민주주의는 정보를 처리하는 힘을 분산시키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반면, 독재는 정보와 권력을 한곳에 집중합니다. 20세기의 기술을 감안할 때 너무 많은 정보와 힘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든 정보를 충분히 빨리 처리하고 옳은 결정을 내릴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20세기에는 범람하는 데이터를 혼자서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기계 학습과 인공지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21세기에는 완전히 다른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독재는 오히려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데이터는 한곳에 모일수록 더 효율적이며 그걸 혼자서 처리할 능력을 갖추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서'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구글과 아마존, 애플, 바이두, 알리바바의 연합 법인 혹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의 연합국이 정보를 독점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회사나 국가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는 정보를 독점하여 인간을 억압하지만 21세기의 빅브라더는 우리를 억압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히 무가치한 존재, 이 사회에서 무관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우리로부터 소비자의 지위를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소비가 없는 자본이 가능한가? 섬길 자가 없는 권력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런 세상은 어떤가? 로봇이 다른 로봇과 주식을 사고 팔고, 채굴 로봇이 전기 회사에 충전료를 지급하고, 전기 회사가 로봇 제조사로부터 시스템을 운영할 기계를 구입하는 세상 말이다. 미래에는 모든 생산활동은 당연하고 심지어 소비활동에서 조차 로봇에게 의존할 수 있다. 여기에 과연 인류의 자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기술이 지배하는 극도로 효율화된 사회에서는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게 떨어질 수 있고 여기서 얻은 막대한 이득을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들임으로써 인간은 공짜 복지를 누리는 파라다이스를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의 자원이 모두 고갈되거나 혹은 태양이 곧 소멸할 시기에 정부와 기업이 자신의 모든 자원을 안드로메다로 옮길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자원에 '인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 어떨까?(시스템의 운영 방식을 결정할 소수의 의사결정권자들은 당연히 예외다)


거대 권력에 착취당하는 사회는 오히려 인간에게 희망적이다. 싸워야 할 명분과 대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억압을 이겨내고 자유를 쟁취한다는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와 완전히 무관한 존재로 전락한 인류에게 허락된 꿈은 무엇일까? 정부가 안드로메다로 이주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우리는 어떤 명분을 갖고 그 결정에 반대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미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했기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정부에 세금을 내지도,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지도 않는다. 억압보다 무서운건 무용함이다. 미래의 기술은 인간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결정의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으며 시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인간에게 아직 미래를 창조할 능력과 감수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정신은, 곧 소멸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