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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_관계의 거리

WiredHusky 2018. 12. 30. 10:45





구병모의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에는 다양한 소설이 실려있다. '글을 짓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물씬 풍기는 작품들, 그러니까 글쓰기가 작가에게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갖는지, 글쓰기 그 자체란 도대체 무엇인지 밝히려드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21세기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여자이자 작가, 그리고 엄마인 '인간 구병모'의 고충과 고민이 담긴 작품도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개 SF 또는 판타지의 문법으로 진행되며 그 생경함이 이야기에 독특한 결을 만들어낸다. 


구병모의 소설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건 그녀의 주인공들이 철저히 지키려 한 개인의 공간,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두기였다. 진정성이 난무하는 시대. 뜨겁고 강렬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을 드러내야만 참된 것이라 인정받는 투명사회에서 적절히 숨기고, 가리고, 거리를 두는 태도는 상당한 오해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 이기주의자. 에고이스트. 혹은 젠체하는 얌생이. 유난떠는 똥재수.


너무 가까운 거리는 항상 나를 질식하게 했다. 나는 '함께'라는 말 속에 내포된 '감내하기'가 싫다. 같이 사는 세상이므로 때때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언젠가는 나도 그와 동일한 일을 저지를 수 있으므로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함께' 안에는 반드시 개인이 또렷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개인에게 서로 겹치지 않는 충분한 공간을 배당해야만 그것이 건강히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현대 도시인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규정하며 자꾸만 그 거리를 없애려드는 일단의 행동들이 당혹스럽다. 우리는 섞이지 않고도 서로를 진정으로 보살필 수 있다. 거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닐까싶다. 가까이 다가가 상처를 까보이고 그걸 만져보지 않으면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관점이 구병모의 세상 살기와 일치하는 거라면, 나는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그녀의 열렬한 팬임을 자청하지 않고도 그 삶에 동의를 보낼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소설에 대단한 찬사를 보내지 않고도 그 소설에 지지를 안길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보일 삶이 나에게는 너무나 평화롭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이 평화를 깨려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것은 무책임으로, 때로는 배려를 가장한채 등장한다. 함께 살기란 다른 사람의 삶을 기웃대는 걸로 이룰 수 있는게 아니다. 진탕 술을 퍼마신 뒤 속마음을 꺼내보여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을 단단히 부여잡아 그것이 다른 삶에 스며들지 않도록 할 때, 오직 그럴 때만이 함께 살기는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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