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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투 원_독재자와 독점 자본주의

WiredHusky 2019. 1. 20. 10:12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투자가 피터 틸이 이 세상의 기업인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제로에서 하나를 만들라는 것(Zero to One).


지구상의 모든 위대한 기업은 영에서 하나를 만들며 탄생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기존의 것을 10배에서 100배 정도 개선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어 말을 밀어냈고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는 최초의 인간이 됐다. 에디슨은 캄캄한 밤을 빛으로 바꿨고 벨은 우편보다 수십만배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다.


위대한 기업은 기본적으로 독점 기업일 수 밖에 없다. 다른 기업은 0인데 본인만 1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업은 자신이 최초로 만들었던 시장에 경쟁자들이 난립하면서 기존의 1을 1.1이나 1.2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순간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한다. 이 징후를 확인하는 법은 쉽다. 실리콘밸리의 괴짜 CEO들이 재무에 밝은 관리형 CEO로 바뀌고 청바지에 티셔츠, 슬리퍼를 끌던 엔지니어들이 넥타이를 멘 양복쟁이들로 교체될 때를 보면 된다.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징후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실제 피터 틸은 양복을 입는 스타트업 CEO에게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에서 하나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두번째 공통점은 대부분 카리스마 넘치는 CEO가 회사의 전반을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의견을 수렴하고, 조화를 이루고, 이사회와 주주들의 말을 듣고, 온건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 중에 창조와 관련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폭군이며 자신의 엔지니어들을 주 80시간 근무의 지옥 속으로 갈아넣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보다 일을 중시하며 자신의 직원들 또한 자신의 삶보다 일을 중요하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폭군의 군사들은 술탄의 예니체리처럼(직속 경호부대) 집단 최면에 걸린 최정예 수호병들이다.


이 책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경영의 잠언을 수없이 담고 있지만 상당히 편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독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다른 사례에 대해선 아예 귀를 닫아 버린다. 예컨대 우버는 왜 리프트가 선점한 시장에 달려들어 세계 1위의 승차공유서비스가 됐을까? 우버는 정말로 리프트보다 10배 혹은 100배 훌륭한 서비스일까? 피터 틸은 또한 MS가 모바일에서의 출혈적 경쟁을 포기하고 클라우드 사업으로 돌아섬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다고 주장하는데(얼마전 애플을 밀어내고 시총 1위가 됐지만 다시 아마존에게 뺏겼다) 사실 그들은 경쟁 상대를 애플, 삼성, 구글에서 아마존으로(AWS) 바꾼 것 뿐이다. 사실 독점과 경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 도저히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독점은 경쟁이 낳은 결과이지 결코 그 자체가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예전엔 기업이 정부와 유착 관계를 형성해 독점권을 얻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도 다른 기업과의 부패 경쟁을 벌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위대한 기업들 모두 물밑에선 수많은 경쟁자와 싸워왔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경쟁자를 모두 침몰시키고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 단 한척의 배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에서 탄생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을 가장 이상적인 시장의 상태로 생각하며 21세기의 대다수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좋고, 옳은 것이라 믿는다. <Zero to One>은 정치와 경제 두 관점에서 우리가 가진 통념을 배반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10년도 더 된 '블루오션 전략'이나 지금도 수없이 쏟아지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혁신가들 이야기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지만, 피터 틸의 자신감 넘치는 문체와 실제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들이 오버랩되며 상당히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진다. 쉽게 말해,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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