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

수학의 쓸모 본문

수학의 쓸모

WiredHusky 2021. 3. 21. 09:41

이 책은 <수학의 쓸모>라는 제목을 다는 순간 독자의 95%를 잃었다. 막상 읽어보면 수학 얘기는 거의 없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문외한이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즐길 수 있다. 위치는 서점 수학/과학 코너의 매대인데, 선명한 표지 디자인에 눈길을 뺏기면서도 그놈의 '수학' 때문에 애써 외면해 오길 수차례, 마침내 큰 결단을 내고 말았다.

 

<수학의 쓸모>는 AI가 도대체 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맨 처음 읽어볼 만한 입문 교양서다. AI가 확률을 기반으로 하기에 통계와 수학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진짜 쪼끔이다. 넷플릭스의 추천,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 자연어 처리, 자율 주행 등 사례를 중심으로, 특별한 전문 용어 없이 풀어내 이해하기도 쉽다. 기본적으로 글을 재미나게 잘 썼고 번역도 훌륭하다. 두꺼운 양장본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실상 내용은 350p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정신없이 빠져들어 순식간에 읽어치울 수 있다.

 

AI, AI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이런 책을 읽는 게 좀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멀리할 수도 없는 게 바로 이 AI다. 비단 관련 분야에 있지 않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도태되는 게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예상치도 못했던 순간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우리의 인생을 폭파시키거나 하늘로 쏘아 올릴 위기와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이점을 한참 넘은 AI는 우리의 삶을 이차원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마켓 컬리에 고당도 하우스 감귤 1.5kg을 주문하듯 보통 사람들도 AI를 활용해 혁신을 만드는 세계가 코 앞에 온 것이다. 아마 10년만 지나도 우리가 현재 최첨단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이 고물상도 끌고 가지 않을 고대 유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모든 게 그렇게 쉬워진다면 굳이 뭔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엘론 머스크는 뇌에 칩을 심어 기억을 디지털화하는 실험 중인데 성공만 한다면 배운 걸 잃어버릴 일도 없고 매트릭스처럼 헬리콥터 운전하는 법, 주짓수로 상대방 제압하기 등을 다운로드하면 그만 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뭔가를 잘하는 법을 아는 것과 실제로 잘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놓여 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양질의 결과물을 쉽게 낼 수 있는 세상이라면 결국 양질이라는 기준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할 텐데 그런 세상에선 도대체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고민해야 한다. 기계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결국 똑똑한 사람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란 뭘까? 뭔가를 잘 알거나, 시험 점수가 좋거나, 좋은 대학 또는 회사를 다니는 사람일까? 나는 '똑똑함'을 거듭된 실패를 통해 어떤 현상의 궁극 원리에 다가가는 '태도'라고 정의하고 싶다. 뭔가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수많은 사고 실험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수학의 쓸모>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핵심 수학 개념과 거기서 파생된 기술들을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기술을 탄생시킨 아이디어, 그리고 그걸 생각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풀어놓는다. 만들어질 당시엔 자신의 개념이 어떻게 현대를 창조할지 짐작조차 못했던 사람들. 그 생각의 과정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한번? 하는 용기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팔이 의사  (0) 2021.04.04
슈독  (2) 2021.03.28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0) 2021.03.14
진보와 빈곤  (0) 2021.03.07
야간 경비원의 일기  (0) 2021.02.2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