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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괴 도감

WiredHusky 2022. 11. 27. 09:28

다 큰 어른이 되서까지 왜 요괴 따위에 관심을 갖느냐 하면, 어릴 때부터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을 주워 모으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 책상 서랍에는 부서진 전화기 부품부터, 자석, 고장 난 시계, 다양한 크기의 쇠파이프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용도는 당연히 불명.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을 고이 모아 보관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힐끗 눈길을 주고 지나친 것들 일지 몰라도 내게 괴물과 귀물 온갖 귀신들은 과거에 실재했고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자기들만의 세계를 갖추고 살리라는 상상의 끈을 이어가게 만든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런 소재들을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와 게임에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더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 요괴 도감>은 나 같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꾸린 개인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책이다. 오덕들의 구매력은 워낙 정평이 나있지 않은가. 정가의 10배로 거래되던 책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정식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용재총화>, <어우야담> 등 고문헌과 도시전설, 다양한 민담을 바탕으로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국에 존재했던 괴물, 귀신, 사물, 신적 존재 218종을 소개한다.

 

분류는 크게 괴물, 귀물, 사물, 신으로 나뉜다. 괴물과 귀물은 살아있느냐 아니냐, 물리적 실체냐 영적 존재냐의 차이로 보면 된다. 예컨대 구미호는 괴물에, 도깨비는 귀물에 속한다. 사물은 영험한 또는 사악한 힘이 깃든, 일종이 아이템이라고 보면 된다. 신은 사방신, 설문대할망 등 한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신화는 고대인들이 이 세상을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도입한 수단이니 그렇다고 넘어가도, 괴물과 귀신의 목격담은 왜 시간을 막론하고 계속되는 걸까? 문헌을 보면 장삼이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역사 속 위인들이 진심으로 믿는 듯 진지하게 남긴 기록들도 있다. 일부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 같다. 거구귀를 타고 과거를 보러 가 장원급제했다는 이야기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 이야기처럼 인물을 신화화하는 기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래, 그 시절에도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들이 아니라 출처, 생김새, 목격담을 짤막하게 구성한 글이니까. 쭉 읽어나가기엔 지루할 가능성이 높다. 인덱싱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에도 좋다. 하지만 나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이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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