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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홀

WiredHusky 2025. 4. 6. 16:06

<화이트홀>은 카를로 로벨리가 쓴 책 중에 가장 읽기가 쉽다. 동양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라 안 그래도 어려운 물리학의 세계를 메타포로 덧발라 모호함을 가중하는 분인데, 어쩐 일인지 이 책은 쉽다. 물론 중간중간 사족이 등장하는 건 맞다. 그러나 그 사족도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아인슈타인이 중력의 원인을 밝힌 방정식을 내놓은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해를 구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처음으로 답을 찾아낸 사람은 정말 의외의 인물이었다. 독일에서 전쟁 중인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참호 위로 빗발치는 포탄의 선율을 들으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풀어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슈바르츠실트의 해다.

 

슈바르츠실트가 밝혀낸 해에는 블랙홀의 존재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의 풀이가 맞다면, 블랙홀은 필연적이었다. 밝게 빛나던 별이, 그 광채의 연료였던 수소를 모두 소진한 뒤 자기 자신의 무게(중력)를 이기지 못해 작게 작게 수축하다가 결국 임계점을 넘어 빛마저도 빠져나갈 수 없는 괴물로 변한다는 것. 아인슈타인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 이론은 수많은 증명과 관측에 의해 사실로 드러난다. 이제 블랙홀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이트홀>이 던지는 질문은 그럼 그 블랙홀이 어디까지 수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엔 수많은 이론이 존재한다. 가장 쉬운 건 0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0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공간에서 사라진다는 걸까? 그 말이 맞다면 블랙홀이 빨아들인 그 수많은 물질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질량은 보존된다고 배웠고 이는 블랙홀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수축의 어느 순간 블랙홀이 다른 공간과 연결되어 먹어치운 것들을 다 토해낸다고 주장한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카를로 로벨리의 화이트홀은 이것과는 좀 다르다. 우주에 대한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으면서도 내 생각은 왜 여기까지 닿지 못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공간에도 최소의 단위라는 게 존재한다. 마치 양자가 그런 것처럼, 공간은 플랑크 영역이라 부르는 크기보다 결코 작아질 수 없다. TV를 떠올리면 된다. 지금 시청 중인 드라마의 화면을 점점 줄인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리 해상도가 높은 3840 X 2048의 4K TV라도 결국 1 X 1, 즉 단 한 개의 픽셀 이하로는 줄어들 수가 없다. TV를 끄지 않는 한!

 

공간이 이 크기에 다다르면 다른 물질과 마찬가지로 양자적 요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는 말로는 형용조차 불가한 미시의 세계로 진입한 공간은, 그 순간 반전하여 비디오를 거꾸로 돌린 듯, 바닥을 치고 튀어나와 모든 것을 뱉어내는 화이트홀이 된다. 여기서 섬찟한 느낌을 받았다면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것은 빅뱅 아닌가?

 

우리가 사는 우주는 어쩌면 한 별의 소멸 이후 시작된 부활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잿더미 속에서 계속 되살아나는 피닉스처럼. 명멸을 반복하는 우주. 정말 신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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