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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_방수 돗자리 위에서 만나요

WiredHusky 2016. 3. 20. 11:15






박민규의 걸작이라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나와도 인연이 많은 야구팀이다. 나는 삼미의 후신인 청보 핀토스(뻐드렁니를 한 당나귀가 마스코트 였던 것 같다. 프로 스포츠에 당나귀라니!)와 태평양 돌핀스(당나귀 보다는 백 배 정도 귀여운 돌고래. 하지만 야구는 육지에서 한다.)를 응원하며 자랐고 그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삼미에 뿌리를 두고 있는 팀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만큼 강팀으로 세상에 등장한 첫 해 한국 시리즈에서 준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의 우승을 지켜보며 야구를 떠난 사람이다. 왜냐고? 너무나 막강한 이 팀이 도저히 나의 팀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삼미와 청보와 태평양은 그 누구보다도 패배에 익숙한 팀이었다. 나는 그들이 7개의 팀 중 5위를 할 때 또는 8개의 팀 중 6위를 할 때 가장 기뻤고 꼴찌들과 접전을 벌여 가까스로 최하위를 탈출할 때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다. 물론 태평양 돌핀스가 기적적으로 2등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일종의 휴가 같은 것이었고 휴가는 본디 길지 않은 법이라 그들은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최하위의 진흙탕 속을 뒹굴었다. 이런 팀이 유니콘을 타고 한국 시리즈를 질주했으니 내 배신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겠지?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쩌다가 내 몸 속에 패배자를 사랑하는 피가 흐르게 됐는지를 말이다. 태어날 때 부터 받은 저주의 피일까? 아니면 불행히도 인천에서 태어나 그들을 응원하게 된 탓에 나도 모르는 사이 스믈스믈 피 속으로 스며드는 패배의 DNA를 받아들이게 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피가 지독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띄고 있어 도저히 씻어낼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일등을 해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강팀을 응원해 본 적이 없으며 한 번도 주류 사회에 낀 적이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나는 언제나 꼴찌에게 갈채를 보내며 살아왔다.


이 소설은 세상의 모든 꼴찌들에게 보내는 위문 편지다. 작가 또한 삼미 슈퍼스타즈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삶을 산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꼴찌에 대해 잘 알며 누구보다도 패배의 진실을 잘 꿰뚫는 사람이다. 그래서 박민규의 소설들은 일종의 혈액 검사지다. 당신의 중지를 바늘로 찌른 뒤 두어 방울의 피를 종이 위에 떨어뜨려보라. 그리하면 당신의 몸 속에 패배자를 사랑하는, 지독하게 끈적하고 태평한 그 피가 흐르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희한하게도 이 패배자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아본다. 눈빛만 스쳐도 척! 게다가 이들은 은근히 잘 뭉친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둘 혹은 셋 씩 뭉쳐 있다. 청소기를 피해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 똘똘 뭉친 먼지처럼 세상의 끝없는 제거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제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우리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먼지가 되 본 사람은 안다. 오히려 당신들이야 말로 우리의 동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홍어 같은 책이다. 못 먹는 사람은 죽어도 못 먹는다. 그러나 맛을 아는 사람은, 크... 벌써 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게 소설이지?"라고 생각한다. 뚜렷한 서사는 없고 말장난처럼 한없이 늘어지는 문장이 터진 봉투에서 줄줄 새는 반찬 국물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반면 우리는 "어떻게 이게 소설이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세계의 그림자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 폭군 같은 태양 아래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침묵이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없구나"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침묵의 나선 효과. 잠깐! 그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잠시 이 나무 그늘 아래 앉아보라. 여기 냉수건과 쭈쭈바와 방수 돗자리가 있다. 당신은 방수 돗자리에 앉아 냉수건으로 목을 훔치며 쭈쭈바를 빨아 먹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뒤를 돌아보고 순식간에 지구 보다도 커진 방수 돗자리 위에 소처럼 누워 쉬는 수 많은 삼미의 팬클럽을 발견한다. 우리는 우리의 피를 창피해 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종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이제 당당히 나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임을 인증하자.


*박민규 씨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거꾸로 보는 한국 야구사'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합니다. 소설가 본인이 저작권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시절에 벌어진, 그야말로 무지의 소치임을 인정했으며 자신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빚임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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