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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PXsociety
의 김혼비와 의 황선우 작가가 편지를 주고받는다. 서로를 향한 연정을 아낌없이 드러내는데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다 보니 초반엔 뚝딱뚝딱 서먹하다. 상견례 자리에서 처음 사돈을 마주한 분위기. 숨 막히는 침묵이 두려워 끝도 없이 덕담을 늘어놓는 기분이랄까?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말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전부 촌스러운 꼰대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온 힘을 다하는 마음이 혐오의 대상이 됐을까? 열심히 해도 무엇하나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 같이 숨이 막힌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최선을 다해 얻고자 하는 열매의 위치가 지나치게 높아진 게 원인인 듯한데... 서울숲 트리마제나 한남 나인원 아파트에 살고,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포르셰 카이엔을..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의미일까? 전근대와 근대의 수백 년 간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었고, 중화의 본토였으며, 사대의 대상이었다. 대중화가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완전히 패해 멸망한 뒤에도 그 주종의 관계는 끝내 살아남아 오히려 신하가 주인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소중화에 갇히게 되었다. 그 뿌리가 너무 깊었는지 내 윗세대는 확실히 중국에 대한 모호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색적 풍광을 끝도 없이 내놓는 광활한 대지, 춘추와 전국을 수놓은 철학자, 화산과 곤륜을 지배한 강호인의 향연.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고 최근엔 문화 분야에서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이 관계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요즘 사람들에게 중국은 모든 분야에 짭퉁이라는 독극물을 풀어놓은 파렴치한 나라이자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미개한 민..
주황 호랑이 부족 열세 살 세빈은 존경하는 환 삼촌을 따라 우주군에 입대한다. 그녀의 꿈은 언젠가 환 삼촌처럼 선장이 되는 것. 그런데 생도가 되어 우주선에 탑승한 순간부터 불길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반역자로 기소되어 선장 직위를 박탈당한 환 삼촌의 흔적이 우주선에 깊게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배경으로 한 '천 개의 세계'는 이름과 어울리게 수많은 종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주황 호랑이 부족 세빈은 그냥 부족신이 호랑이인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정말로 호랑이다.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투의 순간이 오면 거대한 호랑이로 변신해 앞발을 휘두른다. 어흥! 우주군은 이처럼 초자연적 특성을 지닌 자들로 가득하다. 고블린도 있고, 학도 있고, 우주 밖에서도 살 수 있는 천인이 있는가 하면..
더티 워크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필수 노동을 일컫는 말이다. 단어가 드러내듯 일하는 환경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결한 노동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감정적, 심지어 신체적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은 일도 포함된다. 는 그 직종을 크게 4개로 꼽아 밀착 취재한다. 첫째는 교도관, 둘째는 미군의 드론 조종사, 셋째는 도살장 노동자, 넷째는 석유시추선의 일꾼이다. 한국 독자라면 이 4개를 모두 듣고 났을 때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교도관. 군부 독재 시절에는 교도소가 부정한 권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교도관을 부역자로 보는 시선도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나는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교도관이 좋게 그려진..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더 이상 보탤 말이 필요 없는 완벽한 문장이다. 하라 료라는 작가는 처음인데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계에서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 사진을 보니 콧수염이 멋있다. 작가의 얼굴을 봤기 때문인지 시리즈의 주인공 사와자키의 말과 행동에서 저절로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의 시선 따윈 상관없고, 속세에도 큰 관심이 없지만, 자기 일에 확실한 원칙이 있고 고집스럽다. 사무실엔 이미 죽은 파트너의 간판이 여전히 달려 있다. 페인트 칠은 다 벗겨졌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블루버드. 그럼에도 궁색해 보이지 않는 멋쟁이가 바로 사와자키란 탐정이다. 그에게서 하라 료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그저 착각일까? 배경은 버블경제가 무너..
나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한다. 다른 생활 습관에 있어선 보통 사람들보다 상당히 통제된 삶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음에도 말이다. 음식에는 뭔가 기묘한 점이 있다. 위는 완전히 부풀어 더 먹을 수 없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냄에도 뇌는 간단히 그 호소를 무시한 채 꾸역꾸역 음식을 욱여넣도록 지시한다. 대악마 루시퍼가 대주주로 있는(영화 에 따르면)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의 대표는 중독을 '그만두기 힘든 반복적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정말 탁월한 표현이다. 그렇다. 중독은 그만두기 힘든 반복적 행동과 다름 아니다. 유튜브를 그만 보기 힘든가? 인스타그램을 끊기 어려운가? 중독이다. 중독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의했을 때 따르는 부작용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런 건 그냥 학술의 영역으로 남겨두자. 우리의 반복적 행동이..
인간의 뇌만큼 신비한 기관이 또 있을까? 완전히 미지에 가려 보이지 않던 뇌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막연했던 신비가 이제 무한한 경이로 뒤바뀌고 있다. 물질의 관점에서 봤을 때 뇌는 고작 1.5kg에 불과한, 그것도 대부분이 물과 소량의 단백질로 이뤄진 분홍색 살덩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 '세계'가 존재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계절이 바뀌는 이 행성처럼, 뇌는 평생 보고 듣고 맡고 느끼는 경험의 강물을 따라 우주를 구성한다. 최신 뇌과학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역시 신경가소성과 생후배선의 원리일 것이다. 나이 든 어른들이 흔히 하는 '머리가 굳었다'는 표현은 일견 맞기도, 또 틀리기도 하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뇌로 전기 신호를 보내는 신경 통로가 형성되는데 이 행위가 반복될..
은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집중력 상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집중력을 잃게 되면 어떤 위기에 직면할까? 우선 개인의 삶에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이루고 싶은 일을 달성하는 것과 깊이 생각하는 능력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쥐꼬리만 한 연봉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문제는 이 집중력의 위기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집단적 집중력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처한 환경, 경제, 정치적 문제를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만든다. 집중력 상실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서비스 체류 시간을 늘리려는 빅테크 기업들의 UX 전략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GUI를 개발한 진정한 애..
1983년에 첫걸음을 뗀 한국추리문학협회는 2년 뒤 한국추리문학상을 제정한다. 2007년부터 여기에 단편 부문을 신설하는데, 이 책 이 바로 그 단편 부문의 수상작들이다. 협회나 문학상이 이토록 오래되었는데도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괜히 한국이 추리나 SF 같은 장르 소설의 불모지로 불리는 게 아닌 것 같다. 순수 문학의 존재가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약해져 가는 이 시대에 그나마 장르 소설이라도 남아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지만, 한국은 그 자리를 이미 웹소설에 넘겨준 것 같다. 문학은 순수든 장르 든 간에 독자의 구매 위에서 뿌리를 내린다. 독자가 사서 읽어주지 않으면 성장은커녕 존재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 장르 문학계가 더디게 발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독자의 부..
2021년 7월 베이징에서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중국이 샤오캉 사회 건설의 완성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샤오캉 사회란 절대빈곤의 문제가 해결되어 인민 모두가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대만인이었다면 이 오래된 적의 눈부신 발전보다는 뒤이은 말이 더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이 날 시진핑은 타이완의 통일을 완성하고 공식적인 독립을 위한 어떤 시도도 분쇄하겠다고 엄중하게 발표했다(p.40). 인구가 14억이 넘고, 4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자, 3대 이상의 항공모함을 갖춘 유이한 국가인 중국이, 만약 대한민국을 향해 저런 발언을 했다면 나는 아마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2022년 중국이 발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