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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PXsociety
이 소설은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품이다. 2021년 겨울 존 르 카레로 더 잘 알려진 데이브 존 무어 콘웰은 폐렴으로 사망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약속을 하나 했다. 언제쯤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무조건 약속하라 말했고 아들은 그러겠노라 했다. 당신이 죽고 난 뒤 책상에 미완성 원고가 남아있다면 대신 마무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는 그렇게 탄생했다. 존 르 카레가 살아생전 이 책을 내지 못한 이유는 뭐였을까? 소설이 신통치 않았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이야기를 살려낼 수 있을까? 사자의 자식이 고양이일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위대한 사자이리란 법은 없다. 아버지가 웬만한 사자가 아니지 않은가! 아들은 초고를 읽고 푹 빠져들었다. 초고 단계의 실수들은 보였다. 하지만 편집을 거치지 않은 원고치고..
현대 사회에서 범죄는 스펙터클이다. 경지에 이른 미디어는 폭력과 살인을 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눈길만 줘도 범죄자의 성격이 줄줄이 그려지는 전능한 프로파일러와 손만 대도 단서가 수집되는 천재 법의학자의 이미지가 여기서 탄생했다. , 를 보며 이 직업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이 편집된 이야기와 얼마나 다른지는 여기에 매료된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수사는 대개 지루하다. 용의 선상에 오른 주변인을 끈질기게 탐문하고 어떨 때는 피해자의 몸에 새겨진 문신 하나를 들고 온 도시의 문신 가게를 찾아가야 한다. 법의학적 단서는 찾아낸 살인 도구가 피해자에게 사용된 것이 맞다는 걸 증언하거나 찾아야 할 도구가 어떤 형태인지를 알려주는 데 그친다. 현장에 뿌려진 핏방울은 용의자가..
오늘날 전기차의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은 유럽 내 내연기관 차 생산 중단 시기를 2033년에서 2023년으로 앞당겼다. 벤츠도 2023년을 마지막으로 내연기관과 작별한다. 몇몇 업체들이 원자재 수급의 불균형, 높은 전기차 가격, 전기 생산에 따르는 막대한 탄소 배출 등을 따지며 주춤대고는 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세계의 의지는 전기를 향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산업이 무려 반백년에 가까운 업력을 이어왔음에도 여전히 화석연료가 우리의 삶을 압도하는 이유는 화석연료가 가진 독특한 이중성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에너지원이자 에너지를 저장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석유는 뽑아놨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연료 탱크에 가득 채운 휘발유는 자동차..
나는 논쟁을 싫어한다. 생각과는 다르게 논쟁은 한쪽이 엉터리 논리를 펼쳐서가 아니라 양쪽이 다 맞는 말을 할 때 성립한다. 연애 상담이라면 그래, 둘 다 옳지 옳아, 하며 하나씩 양보해 타협하라는 중재안을 내놓을 수 있지만 회사 일에서는 이런 식으로 넘길 수 없는 순간이 많다. 중재안으로 팀은 평화를 찾을 수 있겠지만 고객은 그렇지 않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반푼이 서비스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뭔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좋게 좋게 가자. 이건 좋은 게 아니라 이기적이고, 무능한 거다. 비용과 수고가 드는 일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야 한다. 꼭 성공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얻는 게 있어야..
은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가 아직 밥을 벌기 위해 쩔쩔매던 시절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누나의 자식들까지 입양하여 대가족을 이룬 그에게 이름 없는 작가의 삶이란 결코 녹록지 않은 적수였을 것이다. 어디서 글을 쓸 용기가 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이 위대한 용기가 출발한 지 거의 20여 년이 지나서야 그가 성공다운 성공을 맛봤다는 것이다. 짹짹? 이 책에는 이후 커트 보네거트가 끈질기게 추구해 온 테마의 씨앗이 골고루 심겨 있다. 트랄파마도어 행성, 미래를 안다는 것의 의미, 자유의지 같은 것들.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킬고어 트라우트는 아직이다. 주니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과 의 믹스라는 말에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에는 ..
대한민국은 빈곤층부터 상위 중산층까지 모두 계층 하락의 불안에 시달리는 특이한 나라다. 언제부터 그랬냐 묻는다면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적어도 8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1989년의 대한민국은 국민의 75%가 '나는 중산층이다'라고 대답하는 나라였다. 실제 이 중 일부는 소득을 기준으로 볼 때 중산층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는 당시 한국인들의 계층 상승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불과 20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2010년대에 이르러 이 수치는 20%대로 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소득상 중산층에 속해있었다는 점이다. 2010년대의 한국인은 80년대에 비해 확실히 기가 죽어 있었다. 80년대에는 중..
이 책의 짧은 서평들을 보다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책을 읽은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이는 저자의 논지와 너무 거리가 멀다. 이 책은 최초의 석유 시추 시대부터 최근에 이르는 유가의 변동을 지루할 정도로 세세히 늘어놓는다. 어떤 의견을 뚜렷이 제시하기보다는 최대한 정확한 사실을 수집하여 박물관처럼 전시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 같다. 출판사도 초월 번역을 의식했는지 원제 (유가 변동성)을 더 크게 써놨다. 석유도 시장의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한다. 그런데 석유에는 좀 특별한 점이 있다. 우선 수요의 측면에서 보면, 유가가 수요의 영향을 받는 건 맞지만, 수요가 반드시 유가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이유는 석유가 '필수재'이기 때문..
홋카이도 출신의 신도 요리코는 야쿠자 수십 명을 한꺼번에 박살 내는 괴력의 여자다. 폭력을 갈구하는 욕망이 핏 속에 흐르고 있다. 화장이나 쇼핑, 자신을 가꾸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주먹이 뼈에 닿아 부러지는 느낌, 오로지 그것만이 신도 요리코를 살아있게 한다. 그녀는 괴물이다. 독보적인 캐릭터와는 달리 이야기는 좀 갸우뚱하다. 야쿠자와 시비가 붙어 본거지에 잡혀온 요리코는 그곳에서도 한 바탕 난리를 치며 진실로 살아있는 야생의 짐승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그녀를 제압한 건 40킬로그램이 넘는 도베르만이었다. 개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요리코가 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도 말을 듣지 않던 요리코는 야쿠자가 기르는, 처음 본 개를 죽인다고 협박하자 마침내 마음을 꺾는다. 맡겨진..
전 세계에 극우가 만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는 파시즘 정치가 동작하는 방식, 그들이 어떻게 멀쩡한 시민들을 극단으로 이끄는지를 분석한다. 파시즘 정치의 시작은 구별이다.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선 우리가 특별해야 하므로 한 민족의 역사가 완전한 허구에 기반해 신화화된다. 보통 순혈에 대한 망상은 히틀러가 거의 모든 악명을 뒤집어쓴 덕분에 내로남불에 빠지기 쉬운데, 사실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심지어 왕까지 외국인과 결혼한 사례가 수두룩한 역사를 보고도 우리 배달인이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을 갖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국가는 조작된 신화를 교육, 문화에 대대적으로 침투시켜 선전을 시작한다. 이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민족혼을 부정하는 배신자. 진실은 매도, 비판은 폭력의 대상이다..
우아한 제목에 홀려 집어든 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폭력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 비하면 은 발레에 가깝다. 피를 쏟는 방식이 상어와 독수리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다 읽고 나서야 원제인 를 발견했는데, 번역계에 노벨상이 있다면 이 소설의 옮긴이 박영인 씨에게 수여되리라. 는 LGBTQ에 인종 문제까지 섞는다. 주인공 아이크와 버디는 각각 흑인과 백인이다. 두 사람에게는 모두 아들이 있다. 이 아들 둘이 결혼, 아이까지 입양해 가정을 꾸린다. 아들들은 기자 생활을 하며 LGBTQ의 수호자로 살아가다 우연히 위기에 빠진 트랜스젠더 여성을 돕게 되는데, 그녀에게 얻은 정보로 폭로 기사를 준비하던 중 총에 맞아 뇌수와 장기를 도로 위에 흩뿌리고 죽는다. 이제 아버지들의 차례다. 당연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