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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PXsociety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표준 컨테이너의 크기는 길이가 약 12.5미터, 너비는 약 2.5미터다. 이 표준 컨테이너는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국제 운송비라는 항목을 기업의 비용 목록에서 거의 삭제했다. 컨테이너선은 미국 매사추세츠에 위치한 제조업체가 27개국에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했고, 호주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와인 한 병을 병당 15센트의 가격으로 운반하게 만들었다. 컨테이너선이 없었다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현대의 중국도 존재할 수 없었다. 세계화는 디트로이트 같은 자동차 왕국에서 한국의 크고 작은 제조업 중심 도시까지, 수많은 도시에 몰락을 가져왔다. 1956년 역사상 최초의 컨테이너선이 운항을 시작했을 때 이런 미래를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 물류 혁신은 관세와 운송비..
에서 자유를 얻은 한니발 렉터의 살인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렉터의 새 도살장은 이탈리아의 피렌체다. 내국인을 압도하는 고어 구사 능력과 역사 지식으로 박물관 관장에 임명된 한니발 렉터는 그곳에서 변함없는 고급 취향을 향유하며 포식자의 삶을 이어간다. 육체적 감금이 없는 렉터에게 인간의 세계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얻어내는 이 초월적 능력은 그가 소시오패스 살인마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보인다. 연쇄 살인범을 검거해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증거 조작 혐의로 명예가 실추된 이탈리아 경찰 파치의 도전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도 뛰어난 감각과 수사 능력을 지닌 경찰이었지만 렉터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파치가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고작 렉..
어떤 현상과 그것에 대한 학문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먼 순으로 우열을 가리는 대회가 있다면 아마 경제학이 압도적으로 우승을 거둘 것이다. 경제, 경제, 경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단 일초도 거르지 않고 피부로 느끼는 실제가 어떻게 학문으로 변했을 때 그토록 다른 향기와 모양을 갖는 걸까? 실업과 도토리만 한 월급은 치가 떨릴 정도로 생생한데 자유무역이나 관세,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라는 말은 밤하늘 저 끝의 흐릿한 별보다도 멀게 느껴진다. 그들이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말이다. 장하준이 전 세계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책은 이다. 이 책은 그의 전작 와 거의 같은 얘기를 했음에도 판매부수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둘 다 읽어본 내 입장에도 보다는 이 훨씬 재미있었다. 벌써 10년도 더 ..
1988년에 출간된 토마스 해리스의 장편 소설 은 그야말로 서스펜스의 마스터피스라 할 만하다. 토마스 해리스는 한니발 렉터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들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여기서 본인이 가진 문학적 에너지를 모두 쏟아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고 이 작가를 감히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의 조앤 K. 롤링을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듯이, 토마스 해리스는 소시오패스 천재 살인마가 등장하는 서스펜스 장르에서, 우주의 역사가 다한다 해도 변하지 않을 주춧돌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을 읽고 있으면 요즘 나오는 그 세련된 범죄 이야기들이 모조리 빛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988년이라니. 35년 전 이야기가 이토록 생상하게 읽힌다는 건 이 소설이 가진 생..
는 동류의 책들이 갖고 있는 치명적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선언은 있는데 구체적 방법이 없다는 것. 좋은 사례를 여럿 제시하면 그것을 귀납적으로 추론해 핵심을 뽑아내는 건 독자의 몫일까? 뭐 두어 발 양보해 그렇다 쳐도 사례 자체가 그다지 신박하지 않은 건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워낙 옛날에 나온 책이라 개정판을 뽑았음에도 내용이 낡았다. 게다가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너그럽게 보면 유명 마케터의, 자기 자랑 섞인 에세이로 읽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무명의 내가 하는 말을 여러분이 들어줄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으니 몇 마디 남겨보려 한다. 그래도 창의력이 요구되는 직종에서 십수 년 일하다 보니 나에게도 나름의 방법이 생겼다. 물론 나는 석사도 박사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
이 소설은 하나의 진실을 네 개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물론 독자에 따라 '독특함'이란 표현에는 동의를 거부할 수도 있다. 흔히 '라쇼몽 식'이라 불리는 이런 서술 방식이 여러 미디어에 심심치 않게 존재해 왔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특함이란 단어를 좀 더 유심히 돌아보면 확실히 '유일함'과는 다른 궤를 그린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는 유일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소설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이야기의 1부는 주식으로 억만장자가 된 앤드류 베벨의 이면을 폭로하는 소설 속 소설이다. 이라 불리는 이 소설에서 앤드류는 대공황기에 공매도를 때려 주식 시장을 궤멸시키고 본인은 떼 돈을 번 인물로 그려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덕적으로 지탄했지만 앤드류는 오히려 거품 낀..
국제결제은행 BIS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우선 지급결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거의 현금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실물 카드조차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실정. 사실상 돈은 디지털화된 신호를 따라 전자 장부에 적힐 뿐 물리적인 이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은행 앱에 찍힌 내 월급의 지폐 더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매달 우리 회사의 금고에서 은행 금고로 현금이 이동되는 걸까? 어떤 존재의 의미를 확실하게 드러내려면 그것의 부재를 가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지급결제 시스템이 없다면 바로 앞에서 언급한 현금의 이동이 매 순간 일어나야 한다. 카카오뱅크 앱에서 신한은행으로 5만 원을 보냈다? 그 순간 카뱅의 직원은 현금을 들고 신한은행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 돈을 받은 신한은행이 금..
천현우는 1990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서울로 이주했으나 사기를 맞아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좁은 마산 바닥을 돌아다니며 월세살이를 했다. 열아홉 살 무렵엔 어시장 근처의 신포동에서 살았는데, 술 취한 노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노래방의 고성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어수선한 동네였다. 고양이들이 비린내 나는 바닥을 활보했다. 의거탑 앞에는 붉으죽죽한 홍등가가 자리했다. 서울에서 살다와 서울말을 쓴다는 것이 마산에서는 따돌림의 이유였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맞기도 많이 했다. 공부는커녕 사는 거 자체가 힘들었다. 아버지는 심각한 바람둥이라 두 번째 결혼마저 온전히 마치지 못했다. 천현우는 계모와 함께 여관에서 살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까지 마쳤는데 계모 심여사가 돌연 병에 걸려 아버지의..
최선은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돈도 빽도 없으나 공부는 괜찮게 해 명문대에 진학했고 부드럽게 대기업에 입사했다. 초일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상류라고는 봐줄 수 있는 삶. 하지만 형편이란 자기가 디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라 최선은 자신의 인생이 답답하고 비루해 보였다. 주식은 허구한 날 꼬라박았고 월급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손님에 불과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답이거늘, 시간은 간당간당한 실에 달린 단두대 같아 초조의 불길과 욕망의 폭풍을 일으켜 인간의 마음을 까맣게 태워버린다. 그렇게 최선은 불법 토토에 빠져들었다. 5만 원권 돈다발을 한 아름 들고 온 친구의 모습에 최선을 할 말을 잃었다. 찌라서 개잡주에 들어가 상한가를 쳐도 하..
이 책의 목적은 1990년대에 초공간이론으로 촉발된 과학혁명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초공간이란 4차원 시공간보다 높은 차원을 통칭하는 용어다. 우리가 실험과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세계는 4차원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그 보다 더 많은 차원이 우리의 우주를 구성한다는 이론. 빅뱅 이후 4차원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나머지 차원들은 플랭크 길이 수준으로 수축하여 숨어버렸다. 이 작은 공간을 탐사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현재 지구인이 가진 기술로는 만들 수가 없어 초공간이론은 아직까지 '이론'으로만 남아있다. 물리학자들은 보통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은 믿지 않는다. 초공간이론은 앞서 말한 이유로 관측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석학들이 이 가설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이유는 초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