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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뇌과학

WiredHusky 2022. 1. 2. 09:03

이 책은 아주 흥미로운 멍게의 삶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멍게는 제법 유유자적한 삶을 산다. 멍게 유생은 바다를 헤엄치고 다니다 경치 좋은 바위를 찾으면 휴식을 위해 자리를 잡은 뒤 성체로 변태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남은 평생을 거기에 눌러 앉는다.

 

이런 정착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어린 멍게에게는 매우 단순하지만 뇌가 있고, 꼬리까지 이어지는 신경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일단 살 곳을 찾으면 멍게는 모든 신경계를 소화해버리고, 다시는 그 어떤 의사결정도 하지 않는다. '일회용 뇌'라는 이 흥미로운 사례는 우리가 대체 왜 신경계를 갖고 있는지에 관한 힌트를 준다."(p.19~20)

 

인간의 뇌는 움직이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 차례 놓는 걸 전혀 의식하지 않고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우리에게 이는 매우 낯선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이동은 엄청난 정보처리능력을 요구하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자율주행차가 왜 미래의 상징이 됐는지, 왜 차 값보다 비싼 라이다를 이고 다녀야 하는지, 이를 위해 왜 5G 네트워크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자.(5G는 애초에 넷플릭스를 4K로 출력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이 엄청난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뚝딱해치워 버린다. 사실 이족보행이라는 조건은 넣지도 않았다. 이동 능력만으로도 이미 게임이 안되는데 이족보행이라는 절묘한 균형 조절 능력까지 더하면 아예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걷기를 결정한데는 역시 먹을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빙하기는 이 이동의 스케일을 대규모로 확장시켰다. 뇌와 육체가 움직임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분명 대멸종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대단한 발전을 이뤄온 뇌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위기를 맞게 된다. 사람들이 전처럼 자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뇌는 효율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기관인지라 사용하지 않는 부분을 정리하여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막는다. 신경계를 소화해 다시는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는 멍게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순히 신체 능력의 저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뇌만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매우 다르다. 단잠을 방해받았을 때 짜증이 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짜증을 만들었기 때문일까? 아니, 그 감정을 유발한 건 뇌가 아니라 우리의 신체 감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짜증을 내지 않는 방법은 짜증을 내지 말라는 '생각'이 아니라 신체가 받아들인 감각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전기 신호를 차단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혹자는 쯧쯧 혀를 차며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일체유심조'를 들먹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의 정신 활동에서 육체의 역할을 지나치게 무시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종류의 움직임은 우울증과 만성통증의 원인이 된다고 알려진 '염증'을 줄임으로써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가하면 뇌와 몸 사이의 스트레스 경로를 차단하여 불안감을 줄이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움직임도 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사고는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뇌는 모든 생각과 결정의 주 조정자나 결정권자라기보다는, 신체와 정신간의 대화를 주최하는 일종의 '대화방' 역할"(p.12)을 하는 것이다.

 

특히 체화된 인지라는 개념은 매우 흥미롭다. 아마 흔들리는 다리에서 만난 두 남녀가 커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 사례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뇌가 공포의 떨림과 사랑이 시작될 때 오는 설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러한 개념을 활용해 불안감이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도 있다. 예컨대 걷기를 통해 체화된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심지어 다른 일을 할 때도 영향을 미쳐 자신감을 북돋을 수 있다는 말이다. 트라우마는 어떤 자극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경험이 쌓인 결과인데, 장애물 넘기나 격투기 훈련에서(목조르기같은 극한 상황에서 회피한 경험) 얻은 경험이 이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이 세상 폭력적이고 재수없게 들렸는데 <움직임의 뇌과학>을 통해 이것이 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된 사실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임의로 꾸며낸 행위가 그 자체로 특정한 감정이 될 수 있다니, 우리 몸은 정말로 신기하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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