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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는 소설가의 글쓰기 강의 -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본문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는 소설가의 글쓰기 강의 -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WiredHusky 2012. 3. 18. 17:03




내 주변의 누군가가 글을 팔아 밥을 벌고 싶다는 미래를 말한다면, 나는 그러지 말라고 할 것이다.

책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읽히지도 않는다. 선진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평생에 걸쳐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게 될 때는 시험을 보거나 주식을 사거나 처세를 생각할 때다. 간혹 마음이 상처를 입었을 때도 본다. 선물로 받은 책을 들고 30페이지 가량 읽고 난 뒤 베개 맡에 놔두고 10년을 삭힌다. 이게 바로 오늘날 책의 일생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이란 책에서 평생 동안 고난을 당하는 한 여자의 비참한 일생을 그렸다. 한국의 블로거인 나는 '책의 일생'이란 책을 써서 평생 동안 고난을 당하는 책 한 권의 비참한 일생을 그려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기에 대한 열망은 뜨겁다. 글쓰기 능력을 성공과 연관 시키는 짜릿한 처세 광고의 힘일 것이다. 처세의 글 쓰기는 내가 바라는 영혼의 글쓰기와는 너무나도 다른 대륙 위에 서 있다. 두 대륙 사이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여 눈을 크게 뜨고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을 보라. 이 땅은 대륙이 아니다. 우리의 글은 바다를 건너 저어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전달해 주지 못한다. 우리는 외딴 섬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쓰는가? 아직도 반짝 반짝 빛나고 있는 영혼의 글 쓰기, 그 묵직한 열망의 사슬이 우리를 이 고독한 섬 위에 잡아 두기 때문이다.





이외수는 소설가다. 그는 IT에 밝고 트렌디하다. 트위터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 보지 못했다. 그는 소설가지만 에세이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이 때문에 이외수는 현존하는 소설가 중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소설가가 되었다. 


이외수의 글은 확실히 놀랍다. 방황했던 젊은 시절의 상처와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수십 년의 경험이 색다른 해석과 치유의 문장을 만들어 낸다. 특히 사물과 현상을 재해석해 써내는 촌철의 문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촌철의 힘은 오늘날 이 땅에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능력이다. 촌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외수의 수 많은 베스트셀러 에세이가 증명해 내고 있다. 

이런 그가 '실전적 문방비법'을 표방한 글쓰기 강의 책을 썼다. 나는 처음에 이 문장 뒤로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라는 문장을 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의 글에선 언제나 돈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고선 이 책이 나온 시점이 그가 에세이 작가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앞의 두 문장은 취소다. 이 책은 소설가이자 촌철의 에세이 작가인 이외수가 이 땅에서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진심어린 충고라고 봐야 한다.





나는 이 책의 위대함이 첫번째 장 '단어의 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서 이외수는 그야말로 '실전적 문방비법'이 무엇인지 명확하고 구체적인 강의를 해준다. 이 장은 주로 단어의 본성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실전 예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단어를 '생어'와 '사어'로 나눠 그 차이를 설명한 부분에선, 감탄했다. 원래 혼자 독학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꽤 오랫동안 글 쓰기를 해왔지만 단어에 이런 차이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내가 사어를 많이 쓴다는 것도 알았고 때문에 글이 필요 이상으로 질리는 이유도 알았다. 다음 문장을 한 번 보자.

그놈은 흉기로 자주 자해를 하는 습관이 있다.

이것이 바로 사어로 된 문장이고 내가 쓰는 글이다.

그놈은 뻑하면 회칼로 자기 배를 그어대는 습관이 있다.

이것이 바로 생어로 된 문장이다.

이어서 이외수는 생어 채집을 권한다. 이렇게 수십년 동안 모아 놓은 생어 채집 노트가 좋은 글의 자양분이 될 것은 확실하다.

다음은 단어의 속성을 탐구해 보는 시간이다. 이 부분을 곱씹다 보면 이외수 글 쓰기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어의 속성을 파헤쳐 그 본성에 근거한 쓰임이 어떻게 사물과 현상의 이면을 드러내는지... 오래된 단어들 속에서 이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의미들이 방울방울 피어 오르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글 쓰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느껴보는 충격이었다. 

'글쓰기의 공중부양'이 좋은 점은 책 속의 강의가 일종의 연습 문제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어 10개를 제시 하시오', '새벽녘이라는 단어의 속성을 오감에 근거해 서술 하시오'라는 연습 문제를 매일같이 푼다고 생각해 보자. 생각만 해도 글 쓰기 실력이 쑥쑥 자랄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위대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재능'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이 믿음을 증거한다.

1장 '단어의 장' 말고도 다른 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의 위대함은 이 첫 장으로도 충분하다. 해서 정말로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책의 87페이지 까지만 읽어도 좋다. 그렇게 바쁜 사람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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