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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땅 아프리카에서 한국을 읽다 -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리뷰 본문

암흑의 땅 아프리카에서 한국을 읽다 -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리뷰

WiredHusky 2012. 4. 15. 17:58




책은 느리다. 요즘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시류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책을 골랐다면, 당신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다. 책이 느린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쓰기가 어렵다. 주제를 정하기가 어렵고 구성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뿐만 아니라 출판 후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여러모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다. 책이 무거운 이유는 쪽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이 모든 책임과 의무가 한 쪽 한 쪽 켜켜이 쌓여 단단한 무게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럼 왜 책을 봐야 하는가? 책에는 시류를 초월하는 깊이가 있다. 신문은 하루살이 인생이고 잡지는 한달 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책은 백년을 간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자식에서 또 그 자식으로 누누히 읽혀 내려지는 건 책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이 시류를 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발빠른 신간이라면 중요한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책이 많이 나올수록 사회는 더 똑똑해진다. 속도와 깊이를 겸비한 책 만큼 인간의 지성을 살찌우는 건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아프리카가 없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 책이 2011년의 가다피 축출(리비아의 독재자)을 다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릿적 얘기가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2011년이라면 엄연히 과거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봐주시게 그래도 아직 4월이지 않은가.

이 책은 불행한 노예 무역이 시작됐던 15세기 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역사의 요점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쪽은 현재이며, 역사를 정치와 문화로 나눌 수 있다면 방점이 찍히는 쪽은 정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아프리카의 기아, 폭력, 독재가 모두 현재의 일이며 그 모든 것들이 저급한 정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정치는 실로 암울하다. 아니 암울하다는 말조차 과분하다. 국제 원조는 매년 수십조가 투입되지만 부패한 국가 지도자들은 그 돈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열중한다. 그들이 탐하는건 원조금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초거대 다국적 기업과 신흥 경제 대국들은 아프리카의 석유, 다이아몬드, 철광석 등 양질의 천연 자원을 노리고 부패한 지도자에게 검은 돈을 뿌린다. 아주 싼 값에 자원 채굴권을 넘긴 지도자들은 그 돈으로 무기를 산다. 그리고 그 무기는 독재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살해하는 군대를 무장시킨다.

우리가 이 책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끔찍한 아프리카의 현실이 대한민국 근대 역사와 쌍둥이처럼 닮아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와 내전, 수십 년간의 독재, 군대를 동원한 국민의 학살.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곰곰히 살펴 볼 때 마다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극복한 듯 보이는 대한민국이 실제로는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현정권의 인천공항, KTX 매각 건이나 최근의 지하철 9호선 사건만 봐도 이는 분명해진다. 공권력을 이용한 폭력은 물대포 진압과 쌍용 자동차 파업 해산을 보면 확실해 진다. 정치 검찰을 동원한 야권 탄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국민은 여당을 숭배하고 있으며 그 마음을 선거를 통해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현재는 또 다시 과거를 향해 질주한다. 저자는 '아프리카 비극의 출발점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치 문화에 있다'(176p)고 했는데 과연 여기서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나는 정말로 자신이 없다. 

물론 이 책이 한국의 정치를 비판하기 위해 씌인 책은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아프리카의 불우한 현실과 그 원인을 냉정하게 짚어볼 뿐 그것을 한국의 현대사와 무리하게 연결해 독자를 정치적 가치 판단의 혼란 속으로 몰아 넣지 않는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마도 그 자신이 아프리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쭉 보고 있으면 그런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나 책을 읽는 내내 진지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우리가 아프리카를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경제적 미개척지로서의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거나 그 대륙을 남의 도움 없이는 도무지 회생 불가한 낙오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가진 오래된 역사를 떠올리지 않는다. 고대 문명의 어머니 아프리카는 그렇게 기아와 내전과 부패와 가난에 압사해 버렸다. 

이 책의 부제인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는 결코 과장된 언어가 아니다. 저자는 상기되어 있되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애정어린 손길로 해체한다. 아마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해체된 잔해 속에서, 우리는 아주 밝게 빛나고 있는 아프리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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