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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_읭? 본문
하루키의 수필은 진짜 수필이다. 그야마로 신변잡기, 목적불명, 무게제로. 머리가 복잡해 생각없이 읽으려 산 책임에도 순식간에 후루룩 지나가버려 멍. 하루키 본인도 어깨에 힘을 쭉 빼고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거 너무 뺐잖아...
<앙앙>이라는 패션 잡지에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1년 치 글을 모은 책이 바로 이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다. 패션 잡지였으니 진지한 글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 하고 싶어도 편집자가 절레절레 손을 흔들었겠지.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내가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아직 소설이 되기 전의, 파릇파릇 돋아난 소재의 새싹을 목격하는 것. 그러니까 소설이라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재료를 어떻게 키워내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두 번째로 글의 맛을 느끼는 것이다. 머리를 쥐어싸매고 토해내는 뜨거운 쇳물이 아니라 부담없이 시원하게 쏟아내는 입담. 세 번째는 작가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이다. 소설가의 탈을 벗은 인간은 뭘 먹고 뭘 마시며 뭘 하고 놀까? 일상적으로 쏟아내는 일화에 내가 아는 유명인이 등장하는 쾌감. 도스토옙스키가 톨스토이를 만나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주사를 부리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짜릿하지.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이 중 어느 하나도 없다. 그저 제목에 당했다는 기분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니. 이렇게 멋진 제목에 멋진 표지에 멋진 삽화가 든 책이 이렇게 재미 없어도 되는 거냐? 한 마디로 근사하게 데코가 된 우동을 받아들었는데 한 젓가락 들고 후루룩 빨았더니, 세상에 면이 다 사라진 기분이다. 맛을 느낄 새도 없었어. 이게 무슨 식후 우동이냐? 그럼 왜 그렇게 멋을 낸거야? 그러고보니 이 남자의 수필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1973년의 핀볼>이라든가 <회전목마의 데드히트>같은 것들. 여기도 제목만 근사했지 도통 내용을 알 수 없는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만은 아닌 것 같다. 하루키 자신도 수필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세간의 풍문을 은근히 신경쓰는 것 같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수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수필을 대하는 작가의 근본 태도 때문이다. 하루키는, 자신은 소설가이므로 그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룽차'라는 생각을 갖는다. 게다가 소설에 쓸 재료를 에세이 같은데서 쭉쭉 뽑아써 버리면 정작 소설가로서의 알맹이는 탈탈 털리고 말아요라고 하루키가 걱정한다.
맞는 말이다. 소설가는 소설을 써야 한다. 소설을 쓰지 않고 수필로 연명하는 소설가만큼 꼴 보기 싫은 게 없다. 이런 남자에게 소설만큼 수필도 좀 단단히 채워주세요라고 말한다면 맛있는 우동을 내오라는 말을 들은 라멘 장인의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동은 우동집에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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