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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WiredHusky 2022. 1. 23. 10:35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은 역사의 비극이라는 장르에서 수많은 장면들을 공유한다. 우선 격동기에 식민지배를 당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물론 팔레스타인은 당시 이슬람 세계를 완전 정복하여 사실상 단일 국가와 비슷했던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다 그 대상이 영국으로 마지막엔 이스라엘로 바뀌었고 대한민국은 일본 한 나라에 의해 불법, 강제적 주권 침탈을 당했다는 차이는 있다.

 

팔레스타인의 원수는 그래도 영국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오스만 튀르크는 갈갈이 찢어졌고 그 일부는 영국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영국인은 아랍 대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동시에 유대인 시온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모으기 시작한다. 유럽에 나치가 등장하고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자 이주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다.

 

영국의 한 각료가 유대인의 국가를 창설해주겠다고 약속한 1917년의 밸푸어 선언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본인들은 정작 그 논의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신탁통치가 그 땅의 주인을 배제한 채 결정된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왜 우리는(앞으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과 대한민국인을 통틀어 우리라 칭하겠다)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을까? 두 나라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찢어지게 가난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악덕 사채업자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유럽에서 그들의 이미지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들이 '돈'에 관한 한 얼마나 철저하고 강력했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때는 바야흐로 전쟁의 시간이었다. 이 책은 시온주의자의 책략을 외교와 로비로 퉁치며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외교와 로비라는 게 어디 맨입으로 이루어지던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유대인의 자본이 절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로비는커녕 당장 먹고 살 쌀 한 줌도 없는 상태였다. 대한민국은 악랄한 일제 침략자들에게 뼛국물까지 쪽쪽 털린 상태였고 아랍인들은 상대가 너무 강했다.

 

둘째 외교력이 전무했다. 유대인은 이미 수천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었고 거기서 나름의 기반을 닦아 잘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쌓은 인맥과 영향력은 격동의 시기에 그대로 외교력으로 전환된다. 서구 열강의 눈에 유대인은 본인의 친구이자 조력자였으나 팔레스타인인은 지배 대상이었으니 아랍인들이 맞이할 끔찍한 운명에 공감이 생겼겠는가? 한 민족에겐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결정이 고작 몇 명의 유력인들 사이의 합의로 정해진다는 건 정말 놀랍다. 그러나 이는 외교의 힘이라는 게 얼마나 강력하고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대한민국도 독립운동계에 분탕질이나 치던 이승만 같은 사람이 미국 유명대학에서 취득한 학위를 배경으로 실효도 없던 외교 독립론을 펼치다 건국의 아버지가 된 게 아니겠는가. 나라가 힘이 없을 땐 침략자와 언어가 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성배를 거머쥘 수 있다.

 

셋째, 우리에겐 국가의 이름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한 정규군이 없었다. 유대인들도 국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전후 자기 땅을 얻어 나라를 세운다는 목표 아래 군대를 조직하여 참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참전은 했다. 대한민국도 연합군에 합류해 추축국에 맞섰고 아랍인들은 중동을 노리는 나치에 대항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군이나 팔레스타인군이 아닌 동방부대, 아랍 부대 따위의 패키지에 포함된 개인에 불과했다.

 

우리가 정규군을 구성했더라도 우리를 독립국가로 인정해줬을지는 솔직히 미지수다. 여기서도 역시 외교력이 중요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조건 없이 인정을 받으려면 실력으로 증명된 압도적 규모의 병력이 필요했을 텐데, 세계 각지를 떠돌며 군수품을 지원받고 이념 갈등까지 있었던 대한민국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나마 있던 독립군은 자유시 참변으로 완전히 와해됐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두 주인공 홍범도, 김좌진 장군조차 이후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아랍인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아랍 대 유대인의 충돌이 단순한 민족 갈등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거기에 저항하는 피식민인의 구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든 시비를 가리기는 불가능하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건 사실이다. 유럽의 열강이 팔레스타인 땅의 주인을 철저히 짓밟아 식민화하는 과정은 우리의 아픈 역사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제 이런 일을 다시 겪기엔 상당히 멀리 온 것처럼 보이지만 변덕스러운 역사의 장난은 언제든 우리 민족을 다시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배울 것들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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