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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본문
이도유는 인간 세상에서 재림 예수로 불렸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그는 감독관이었다. 예수와 상의해 이 세상에 종말을 가져올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 1999년의 소동은 나도 정확히 기억한다. 연도를 두 자릿수로 인식하는 옛 시대의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이것들이 기간 산업계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보니 99에서 00으로 넘어가는 순간 프로그램들이 1900과 2000을 구분하지 못해 시스템이 오작동, 비행기는 추락하고 핵미사일이 자동으로 발사되어 지구에 대혼란이 닥친다는 시나리오였다. 음모가 아니라, 뉴스에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밀레니엄' 혹은 'Y2K'라 불리던 버그.
종말론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1999년 7월에는 앙골모아 대왕, 일명 공포의 대마왕이 지구에 강림할 예정이었다. 이것은 중세 유럽의 의사로서 페스트 감염 원인을 정확히 알고 전염을 막았던, 그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었다. 그는 미래를 알쏭달쏭한 시로 표현했다. 그 시는 해석의 힘을 빌어 앙골모아 대왕의 강림을 1999년 7월로 확신했다.
대한민국에는 '휴거'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개신교의 종말론 중 하나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있던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하여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행위였다. 산 자들은 당연히 예수와 함께 천국으로 가고 죽은 자는 필멸의 지옥행이었다. 한 교회는 1992년의 어느 날을 휴거일로 정했고, 이는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왜 92년이었을까? 사실 1999년의 대재앙은 한 번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7년에 걸친 환란의 피날레였다. 따라서 휴거는 1992년 이미 진행되고 이와 같이 등장한 파멸의 짐승들이 각자 고유한 기술을 발휘해 7년간 환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1992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999년도 마찬가지였다. 현대 기술이 이 속도로 발전한다면 나는 2099년까지 무리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종말을 예측하지 못한 사이비 종교들이 수명을 연장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확한 날짜 예측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믿는 자들, 그러니까 자기들의 열렬한 기도에 응답한 하나님이 종말의 계획을 철회하여 온 인류를 구원했다는 것이다. <피와 기름>은 이와는 다른 길을 택한다. 인간을 긍휼히 여긴 예수가, 그는 악한 자든 선한 자든 모두 사랑하는 대인이니까, 7년의 환란과 심판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그저 이 세계가 영원토록 계속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미 죽은 사람들과 앞으로 죽게 될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종말과는 별개로 죽은 뒤에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교리에 따르면 생물학적으로 죽은 인간들의 영혼은 심판의 날까지 잠들어 있다. 판결은 일상이 아니라 일괄 처리 되는 것이다. 바로 종말의 그날에.
대치동 논술 학원에서 보조 강사로 일하는 도박중독자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장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그 비정상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착 붙어가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사람들에게 신물이 나 도망치려는 이도유를 빼앗기 위해 두 세력이 충돌하고, 어릴 때 그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주인공이 소동에 빠져든다. 도박 중독으로 완전히 망가진 인생이었으나, 그래서 그는 과감했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모험 활극이라 부를만한 고속도로 추격전. 관리자가 내려주는 기적의 현현.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루한 교리 문답이 이어질 때도 있지만, 재미가 부족한 소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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