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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펫졸드의 Bit 오딧세이 - CODE 본문

찰스 펫졸드의 Bit 오딧세이 - CODE

WiredHusky 2012. 1. 23. 00:48




내게는 언제나 기원이 문제였다. 이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 저것은 무엇으로 만든 것인가? 그것은 왜 움직이는가? 전광석화처럼 달려 나가는 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건 언제나 이런 뿌리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기원을 헤아리는 것은 꼭 불 꺼진 방에서 스위치를 찾는 것과 같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가까스로 스위치를 켜 보면 그 안에 또 다른 문이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 다시 어두컴컴한 방에서의 술래잡기가 되풀이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어린아이의 질문처럼, 기원은 긴 꼬리를 휘날릴 뿐 좀처럼 본체를 보여주는 법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고 묻는 말에 나는 자신있게 답할 수 있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이라고. 머리 속에 '왜?'가 떠오른 순간 이전의 고요했던 날들은 완전히 박살나 버린다. 평범했던 것들이 더 이상 평범해 보이지 않고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해 지지 않을 때 뇌 속에 쌓인 두터운 껍질들이 일어나며 기원으로 향하는 미로의 문을 연다. 유사이래 이 문에 들어선 사람들은 대개 철학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컴퓨터의 기원을 밝히는 이 책 'CODE'를 철학서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단적인 증거로 저자 찰스 펫졸드는 프로그래머다(나는 대학 시절 윈도우 프로그래밍의 교재로 찰스 펫졸드의 책을 봤다!). 철학자와는 평생 말 한 번 섞을 것 같지 않을 사람. 그런데 이 책이 펼쳐 보이는 컴퓨터의 역사에는 예의 첨단 과학이 유발하는 지끈지끈한 두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낙타의 등에서 산을 보고 송아지의 눈에서 바다를 보듯이, 이 Bit의 오딧세이에는 철학적 사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컴퓨터의 세계는 오로지 0과 1만으로 기술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하필 0과 1일까. A와 B면 안되는 걸까? 아니 좀 더 깊이 내려가서 왜 항상 양자택일일까? 일자무식, 단순한 흑백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 3의 무엇에는 컴퓨터를 못 견디게 할 만큼 어떤 악의적 개념이 숨어있단 말인가? 그런데 신기한건 컴퓨터는 오로지 0과 1만 가지고도 사과와 바나나와 원숭이와 거기다가 그 엉덩이가 빨갛다는 사실까지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런걸 보면 '음양론'이 떠오른다. 음과 양이 어우러져 태극을 이루고 그 태극이 온 세상 만물을 생성하듯이 컴퓨터는 0과 1로 우주를 만들어낸다. 지극히 현대적인, 게다가 지극히 서양적이기까지 한 이 사물의 원리가 어쩜 이리 동양 사상의 정수를 쏙 빼닮았는지... 어쩌면 컴퓨터는 서구 문명 사회가 음양론의 정수를 깨달아 만들어낸, 그 형이하학적 실체인지도 모르겠다. 

0과 1이 음양론의 그림자라면 아스키코드는 구조주의 언어학의 편린이다. 이쯤되면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 컴퓨터의 언어와 그 의미는 철저하게 임의로 결합한다. 예를들어 알파벳 소문자 'a'는 아스키 코드로 '97' 이진수로 표현하면 '1100001'이 된다.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1100001에는 'a'라는 의미를 잉태할 어떠한 썸씽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니피앙이 시니피에의 바다에서 그 하나를 건져 내듯이 컴파일러는 이진수의 낚시대로 우리말의 의미를 낚고 있는 것이다. 

한편 컴퓨터 진보의 역사와 이를 위한 인간의 집념에선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창조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의 미래가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언젠가 컴퓨터가 너무너무 발전해 컴퓨터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정하고 그들 스스로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면, 기술 문명의 발전과 그에 따른 온갖 가치들을 노동의 산물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 이쯤보면 찰스 펫졸드의 'CODE'는 완전히 인문서다. 그것도 철학에 언어학에 경제학까지 잡탕한 종합 인문서말이다. 하지만 고백할게 있다. 
사실 이 책에서 이런 사색을 이끌어 내는건 완전히 자의적이다. 아니 철저히 주관적이다. 아니아니 완전히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철저히 주관적이고 심지어 대단히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한 마디로 개 눈에 똥만 보였다고 밖에...

이 책이 철학과 사상을 컴퓨터의 역사로 은유한 출판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메타적인 철학서라고 설명하는 건 사기다. 하지만 어떻하냐고! 0과 1에서 출발해 논리 회로를(AND, OR, NOR, NAND...) 만들고 그 논리 회로를 좁은 공간에 직접하기 위해 반도체를 만들고 반도체를 모아 CPU를 만들고 그 CPU로 컴퓨터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내가 본 건 음양과 소쉬르와 아담 스미스 인걸.

하여튼 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두서 없다. 제대로 된 출구를 찾았는가 하면 어김없이 딴 세상이다. 자 주절주절 이야기를 딴 데로 돌리는 건 무안하다는 증거. 더 이상 썼다간 매 맞을까 두려우니 오늘 리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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