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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 (737)
deadPXsociety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이것이 첫 문장. 그러고 난 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국에 대한 모든 감상은 이 두 문장에서 나온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시마무라는 한량이다.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라 불리는 온천 마을에 들렀을 때 고마코를 만났다. 고마코는 게이샤. 처음 볼 때 부터 웬지 시마무라의 마음에 와 닿았다. 그건 고마코도 마찬가지. 하지만 알고 있겠지? 여행자와의 사랑이란 예정된 이별을 향해 빠르게 질주하는 기관차 같다는 것을. 요란하게 기적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달려보지만 절벽 위의 철교는 언제나 중간에서 끊겨 있지. 남아 있는 것은 추락 뿐이야. 잔인한 건 이 사실을 남자는 알고 여자는 모른다는 것. 시마무라의 마음 속은 커다랗게 비어 있는 공동이라 ..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사람들은 글을 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노통의 신간 '겨울 여행'은 프랑스 전력 공사에 다니는 남자 조일이 자폐증을 앓고 있으나 천재적인 소설가인 알리에노르를 보살피는 천사 아스트로라브와 겪는 영혼의 쇼크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요약하면, 사랑 이야기. 조일은 직업상의 이유로 이제 막 이사를 마친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 아스트로라브를 만났다. 한 눈에 반했다. 한눈에 반했다는 것, 그래 이거야 말로 인간사 그 캐캐묵은 문제 덩어리의 발상지임을 나는 이 순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조일과 아스트로라브의 사랑은 괜찮았다. 문제는 알리에노르였다. 아스트로라브는 한 시도 알리에노르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알리에노르는 자페증을 앓고 있었고 아스트로라브의 보살핌 없이는 정상..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것이야 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의 본질이라고 나는 쓴 바 있다. 2차 세계 대전의 한복판. 동남 아시아의 한 열도에서는 태평양 너머의 백인들을 위해 기발한 쇼를 기획 중이었다. 제군들! 전 아시아의 산업과 전 아시아의 미개한 인종들이 바로 우리의 지배 아래 비로소 개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머나먼 동쪽에서 적국의 함선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함대는 거대하고 무참합니다. 제군들! 신이 바다를 들어 적함을 깨부쉈던 역사를 기억하십니까! 이번엔 여러분들이 제로센 비행기를 타고 혈혈단신, 적군의 항공모함에 온 몸을 부딪힐 예정입니다. 제군들! 신의 바람을 불러 봅시다. 신민들이 대답한다. *'텐노-헤-카반자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제군들! ..
인조 14년, 후금의 태종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청으로 바꿨다. 조선에 군신지국의 예를 요구했다. 대의의 나라 조선, 기개가 높았으나 말이 더 높아 창검이 아닌 혀로 싸우는 나라. 조선의 임금이 8도에 임전태세를 명해 결전을 다짐하자 후금의 태종은 몸소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향한다. 북방의 칼바람에 단련된 철병에겐 조선의 겨울이 낯을 간지르는 미풍에 불과했었나 보다. 압록강을 넘은지 12일째, 서울이 점령 당했다. 임금은 강화도로 피난하려 했으나 그 길 또한 막혀 있었다. 사대부와 약간의 관군, 도처에서 모여든 향병을 이끌고 인조는 남한산성에 둥지를 튼다. 개전 14일째,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화친을 거부했다. 임금의 성은은 높았고 야만국의 황제는 비천했다. 각도에 ..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은 아멜리 노통의 작품 중 최고다. 나는 '제비 일기' 따위, 그녀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는 문제작까지 읽은 바이므로 이 말은 대체로 신뢰할 수 있다. 노통의 소설엔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쓴 것과 순수한 허구로 이루어진 것이 있다. 둘 사이에는 안타까울 정도로 심한 차이가 있는데 주로 전자는 뛰어난 작품이고 후자는 짬뽕 국물을 뒤집어 쓴 페르시아 고양이처럼 흉물스런 이야기 들이다. 그리고 전자에 속하는 작품들 중에서도 바로 이 소설,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광채로 노통의 필모그래피를 반짝 반짝 빛내고 있다라고 하는 얘기는 이젠 너무 구차한데다가 상투적이고,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으며 더 이상 문장을 늘였다간 나로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버릴까..
스티븐 킹이 유명하다고 해서 처음으로 책을 사봤다. 필사를 할 생각 이었다. 나에게 글쓰기와 생계의 길은 다르지 않아, 하나로 포개져 있으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의 책을 베껴 문장의 힘을 키우고 나아가 생활의 방편을 마련해 볼까 해서였다. 서문을 읽었다. 기가 막히더라.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읽던 책을 관두고 이것부터 집어 들어야 하나? 하고 생각했지만 꾹 참았다. 맛있는 음식은 제일 나중에 먹어야 희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소설을 읽고는 실망했다. 스티븐 킹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 - 상'은 489 페이지의 두꺼운 책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일까? 단편집 치고는 다소 묵직한 감이 있다. 그러나 책의 재미는 두께에 반비례한다는 명제를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으로 떠올..
스티븐 킹은 3억 부 이상의 책을 팔았다. 빗자루를 타고 나타나 코끼리가 건초를 먹어 치우듯 팔아치운 '해리포터'만 없었다면 스티븐 킹은 말 그대로 '킹'이 됐을 거다. 비록 일등의 자리는 호그와트의 마법사 도련님에게 빼앗겼지만 공포, 스릴러 분야에선 역시 이 남자가 '킹'이다. 피와 시체가 꽃처럼 장식되고 으깨진 두개골이 카펫으로 깔리는 세상에선 이 남자가 먹어준다는 말이다. 킹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어린 시절 부터였다. 재밌게 본 만화책을 베껴 최초의 소설을 썼다. 엄마가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러나 전말을 알게 되자 다음 부터는 창작 소설을 쓰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킹은 그 후로 꼬박 꼬박 자기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글을 읽었고, 환호했고, 지갑에서 푼돈을 꺼내 킹에게 주..
오토기조시(옛 이야기)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다자이의 필모그라피에 있어서 이 소설만큼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은 없다. 실패와 우울의 물결로 과잉된 문장들은 이 책에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옛 이야기는 번안 소설이다. 일본에 전해내려오는 옛날 이야기들을 다자이 식으로 옮겨 썼다.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동경에 쏟아지는 폭격을 피해 방공호에 앉아 있으면서, '옷차림도 초라하고 용모도 어리숙하게 생겼으나, 원래 허투루 볼 수 없는 사람인' 아버지(다자이)는 불안에 떠는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그러나 아비의 마음 속에선 자꾸만 자꾸만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참을 수 없었다. 다자이의 삶은 어긋나 버렸지만 글쎄, 이 남자도 따뜻한 햇볕 아래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갔다면 작가가 평..
요즘같이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웬지 모르게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 5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40년, 짧은 생을 마감한 고독한 남자. 평생 수 많은 인간과 부대껴 살아갔지만 끝내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약한 남자였다. 아주 답답할 정도로 약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조차 편안히 받아 챙길 줄 몰랐다. 상대방의 사랑이 커질수록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심각한 자책에 빠져 결국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에게 인간은 대단한 공포이자 부담이었다. 다자이는 죽기 몇 개월 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소설 하나를 완성한다. 바로 '인간 실격'. 이것이 자신을 향한 최후의 비평이었던걸까? 그 후로 한 달, 어깨위로 쏟아지는 인간의 ..
유배된 예술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의 머리가 콩코드르 광장 위를 구르고 있을 때 장전된 길로틴의 밑에선 예술의 머리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시민 혁명은 절대왕정을 붕괴시키고 귀족 중심 사회를 해체시켰다. 그동안 귀족과 왕궁의 후원을 받던 예술 또한 따뜻한 안식처를 강탈당한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부모를 잃은 예술은 이제 거리로 몰려나 정어리, 곡괭이, 밀 등과 경쟁하는 시장 경제의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예술의 고객은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른바 졸부, 머저리, 교양 없는 인간들. 심지어 보들레르는 이런 부르주아 계급의 저급한 미적 취향을 일컬어 '개는 냄새나는 더러운 똥 통조림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 달려들지만, 정작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