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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WiredHusky 2021. 9. 5. 10:15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이후로 이렇게 재미있는 글쓰기 책은 처음이다. 교정 교열자로 일하며 저자와 겪었던 특별한 경험과 원 포인트 레슨 문장 다듬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앞쪽은 무슨 추리 소설을 읽는 마냥 흥미진진하고 뒤쪽은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충고로 가득하다. 얼마 전  읽은 <우리말 어감 사전>은 같은 작가가 썼음에도 좀 지루한 데가 있었다. 보편적 법칙을 다루기보다는 개별 단어에 집중하다 보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어색한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조목조목 밝혀 글을 쓸 때 무엇을 넣고 빼야 하는지, 무엇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명확하게 가르친다. 진정으로 유용하다.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 우선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접미사 '-적'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은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며 대개 빼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훨씬 상쾌해진다.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무엇이 더 나은가?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의 활약 여부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 보여준 활약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들'은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 거나 복수형 명사에는 붙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손에 꽃을 들고 자신들의 부모들을 향해 뛰어갔다.

모든 아이가 손에 꽃을 들고 자기 부모를 향해 뛰어갔다.

 

굳이 '-들'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문장도 있다.

 

사과나무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것'은 정말로 중독성이 강하다. '~하는 것'을 주어나 목적으로 쓰려다 어색한 문장을 만들기 쉬운데 곰곰이 생각해보고 정말 불가피할 때만 쓰는 것이 좋다. 다음은 주어로 쓰인 경우다.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이번엔 목적어로 쓴 경우를 보자.

 

친구들과 같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친구들과 같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문장이란 참 신기하게 한두 글자를 빼고 더하는 것만으로 가독성에 큰 차이를 보인다. 때로는 의미까지 완전히 변하는데 의식조차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한자, 한자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이 한국어를 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정답은 아니다. 저자는 글쓰기의 유일한 규칙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 외는 모두 나름일 뿐이다. 심지어 '외국식 표현'이라 지적하는 문장까지도 그걸 '틀렸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말과 글은 늘 변한다. 만약 한국어 글쓰기에 유일무이한 법칙이 있다면 그건 언제 만들어진 걸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직후에?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었을 때? 표준국어대사전의 최신판이 발간된 날? 설령 완벽한 시점을 선택하더라도 그걸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는 여전히 문제로 남을 것이다.

 

소소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매주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을 쓰는 입장에서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역시 가독성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나는 늘 읽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나와 같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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