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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본문
1988년에 출간된 토마스 해리스의 장편 소설 <양들의 침묵>은 그야말로 서스펜스의 마스터피스라 할 만하다. 토마스 해리스는 한니발 렉터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들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여기서 본인이 가진 문학적 에너지를 모두 쏟아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고 이 작가를 감히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해리 포터>의 조앤 K. 롤링을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듯이, 토마스 해리스는 소시오패스 천재 살인마가 등장하는 서스펜스 장르에서, 우주의 역사가 다한다 해도 변하지 않을 주춧돌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들의 침묵>을 읽고 있으면 요즘 나오는 그 세련된 범죄 이야기들이 모조리 빛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988년이라니. 35년 전 이야기가 이토록 생상하게 읽힌다는 건 이 소설이 가진 생명력을 21세기 내에선 사실상 측정 불가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적어도 2100년까지는 이 시리즈가 문학계에서 차지한 자리에서 먼지 한 톨만큼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토머스 해리스는 기자 출신답게 이야기를 완벽하게 구성한다. 수많은 문장들 중 단 하나만 거짓이 있어도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기사처럼 이 소설은 구성의 허점을 용납하지 않는다. FBI가 연쇄살인범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것 자체는 그렇게 놀라운 점이 아니다. 실제 FBI의 행동과학부는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을 인터뷰해 '악의 마음을 읽는 지도'를 개발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프로파일링'이라 부르는 수사 도구의 시발점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점은 자칫 반복되고 따분해질 수 있는 한니발 렉터와의 면담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에 있다. 이야기는 덩치 큰 여자의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드는 버펄로 빌의 새 희생자를 상원이원의 딸로 설정함으로써 자기 꼬리에 불을 붙인다.
렉터를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정신이상 범죄자 수감소의 소장 프레더릭 칠튼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욕망의 고삐를 단단히 쥐는 기회를 마련한다. 칠튼-렉터-스털링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에서 힘을 잃고 주저앉던 한 축이 일어서자 이야기에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로 새로운 사건들이 고여든다. 그중 백미는 역시 렉터의 탈옥일 것이다.
버펄로 빌과 스털링의 마지막 대결은 손에 땀을 쥔다는 말로는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스털링은 연쇄살인마의 집에서 그와 마주치는 순간 희생자의 생명, 범인의 검거, 자신의 안전이라는 연쇄적 도전에 직면한다. 스털링은 이 무게에 밀려 전기가 나간 지하실에 갇힌다. 야간 투시경을 끼고 먹잇감을 향해 다가오는 버펄로 빌과 창백하게 질린 여성 수사관. 담담히, 또 대범하게 묘사해 나간 이 대목은, 어떻게 해야 이야기를 팽팽하게 당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죽였다. 페이지를 넘기는 두 손은 힘이 들어가 떨렸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양들이 결국 비명을 멈춘다는 비밀을 아는 건 이 이야기의 재미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양들의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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