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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솔직하다 본문
최선은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돈도 빽도 없으나 공부는 괜찮게 해 명문대에 진학했고 부드럽게 대기업에 입사했다. 초일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상류라고는 봐줄 수 있는 삶. 하지만 형편이란 자기가 디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라 최선은 자신의 인생이 답답하고 비루해 보였다.
주식은 허구한 날 꼬라박았고 월급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손님에 불과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답이거늘, 시간은 간당간당한 실에 달린 단두대 같아 초조의 불길과 욕망의 폭풍을 일으켜 인간의 마음을 까맣게 태워버린다.
그렇게 최선은 불법 토토에 빠져들었다.
5만 원권 돈다발을 한 아름 들고 온 친구의 모습에 최선을 할 말을 잃었다. 찌라서 개잡주에 들어가 상한가를 쳐도 하루 수익률은 30%에 그쳤지만 토토는 두 배, 세 배도 가능했다. 최선은 추천인에 친구의 아이디를 넣고 한 달 용돈 30만 원부터 차곡차곡 파멸의 이자를 적립해 나간다. 친구가 불러준 승패승패승승패는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토토. 단순한 운빨 도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충'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팀의 전력을 분석하고 내부인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선수들의 SNS를 추적해 그들의 심리적 상태를 예측 변수로 추가한다.
사람들은 사기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다 지나간 뒤에나 보이는 거다. 욕망의 불을 켠 순간 눈은 멀어버린다. 용돈에서 시작한 토토에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넣었을 때 최선은 파멸의 우체부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그는 돈과 직장을 잃고, 이혼하고, 아이를 빼앗긴다.
아, 그러나 인생이란 밑바닥이라 생각할 때 더 깊은 구덩이가 존재한다는 걸 가르쳐주는 잔인한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희망이 사라진 뇌는 인간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모 아니면 도. 어차피 더 망가질 게 없는 인생. 최선은 전업 토토충이 되어 패스트푸드로 아침을 때우는 건달이 된다. 그 삶은 온갖 악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 무한한 추락의 땅이었다. 부패한 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최후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피는 솔직하다>는 제목이 일품이다. 그런데 왜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메뉴에 찍힌 화려한 사진에 이끌려 주문했지만 맛은 그저 그랬던. 중반까지는 꽤 잘 굴러가던 기차는 마지막 30분을 남기고 심하게 덜컹거리다 아예 선로 중간에 멈춰 운행을 끝낸다. 승객은 이리저리 기워붙인 클리셰를 발판 삼아 정거장까지 걸어가야 하나, 그마저도 꼼꼼치 않아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새어 나온다. 생각이 많은 밤을 날려줄 넷플릭스 B급 영화를 기대했지만 아쉬움만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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