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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 - 데니스 루헤인이 쓰고 마틴 스코시즈가 그린 뒤 디카프리오가 춤추는 섬 본문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접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말 그대로 데니스 루헤인의 원작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읽거나,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를 보는 것이다. 무엇을 먼저 봐야하는지에 정해진 답은 없지만, 충고하건대 소설을 먼저 보라. 그것도 전부 읽는 것은 좋지 않다. 멈춰야 할 시점은 세 번째 챕터인 '셋째 날', 이 책을 기준으로 정확히 403 페이지에 도착했을 때이다.
소설이 이야기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 이유는 역시 서사가 가진 원초적인 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 승, 전, 결. 이 네 단락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꿈꿔왔던 세상을 보고 때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며 이로 인해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 짓는다.
나는 수면욕, 성욕, 식욕처럼 인간을 생존케 하는 근원적 욕망 가운데 반드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망이 추가되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야 마는, 그로 인해 생명을 이어갈 희망을 갖고 상처를 치유했던 인간 역사의 몇 가지 예만으로도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세계 대전과 노예제도와 홀로코스트가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소설가들이 직업을 잃었을지.
물론 서사에도 약점은 있다. 이야기는 분명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탄생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끊임없이 쇠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이야기는 되풀이 할 수록 맥이 풀린다. 충격적이라고까지 느껴졌던 최초의 신선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루함으로 부패한다. 부패의 정도는 특히 씌여진 서사에 더 심하기 마련인데, 구전된 서사가 시대와 화자를 달리하여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한 번 씌여진 글은 결코 그 내용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대부분의 훌륭한 작가들이 작품에 모호한 상징을 넣거나 주제와 의미를 다층적으로 구성하여 자신의 작품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은가? 그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새롭게 해석되는 작품을 원한다.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주제라도 작품에 담고자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작품이 인간 지성사에 길이길이 남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스웨덴행 비행기표까지 물고 올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대중 소설은 그 어떤 장르보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한다.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훌륭한 대중 소설이 갖춰야 할 제 1의 의무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꽉짜인 플롯을 구성 하고 독자가 다음에 벌어질 일을 도저히 알아 차릴 수 없도록 이야기를 교묘하게 전개 시킨다. 특히 '살인자들의 섬'처럼 후반부의 반전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소설에서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치밀한 준비야 말로 대중 소설이 일회용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거 아닐까? 잘 짜인 대중 소설은 마치 샴페인같다. 병째로 흔들어 충만해진 탄산이 뚜껑의 개방과 함께 해방될 때, 이야기는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독자를 희열의 꼭대기에 올려 놓지만, 그 후로는 바닥을 굴러 다니는 빈병만을 남길 뿐이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은 반전 소설로서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마침내 진실이 기다리는 곳에 다다르면 작품 곳곳에 널려 있던 수 많은 복선들이 가시처럼 일어나며 이처럼 명백한 단서를 바보같이 놓치고 지나간 독자의 가슴을 깊숙이 찔러 들어온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번역의 문제는 언제나 외국 소설을 평가하는데 있어 나를 주저하게 만들지만, 어쨌든 이 한마디는 하고 끝내야겠다. 내가 영어로된 원서를 완벽히 이해하고 그 감상을 기가막힌 영어로 쓸 날이 오지 않는 한, 이 소설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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