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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 커트 보네거트의 소품집 본문
나는 보통 6-7권의 책을 한번에 구입하는 편이다. 책들이 배달되면 제일 먼저 읽을 순서대로 책을 쌓아 놓는 작업을 한다. 책과 관계된 일이라면 그저 멍하니 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흥분되는 순간은 이제 막 도착한 책을 책상 위에 늘어 놓고 뭐 부터 읽을까 고민하는 이 순간이다.
이번에는 소설이 네 권, 인문서가 한 권, 만화가 두 권이었다. 만화야 정해놓고 읽는게 아니니까 책장으로 직행 한다. 나머지 다섯 권은 보르헤스의 알렙, 코맥 매카시의 국경을 넘어,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이 책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씨'였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씨'를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커트 보네거트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500쪽이 훌쩍 넘는 '국경을 넘어'와 역시 비슷한 두께의 '살인자들의 섬'을 보면서 소화불량에 빠진 뇌를 상큼한 디저트로 달래겠다는 궁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주말에는 웬만하면 책을 읽지 않는 내가, 특별히 시간을 내 '살인자들의 섬' 후반 150페이지를 단숨에 읽어 치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책을 읽고 감상을 쓰려면 그 책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지난 1년간 글을 써왔던 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아무래도 집중하지 못한 책은 할 얘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책 읽기가 잘 안 될 때 마다 나는 '이렇게 읽으면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어'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치며 정신을 다잡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손에 들고 출근 길 지하철에 올라 회사로 향하는 도중, 나는 깜짝 놀랐다. 책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책 읽는 속도가 결코 빠른 편이 아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출근길에 고작 30페이지를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은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끝나 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책을 덮어 버렸다. 이대로 모조리 읽어 버리면 퇴근길에 읽을 내용이 단 한 쪽도 남지않기 때문이다. 난 내 스스로 뭔가를 해야겠다고 정해 놓은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고 나면 심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예전에도 쪽수 계산을 잘못해 퇴근길에 읽을 책이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 때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진 나는 동공 확장, 방분방뇨,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겪다 네 발로 지하철 플랫폼을 뛰기 시작, 급기야 지나가는 사람들을 침이 질질 흐르는 입으로 물어대다 긴급 출동한 경찰 특수부대에 진압된 적이 있었다라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어쨌든 책을 읽지 못하면 심하게 초조해 한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들어보라.
나는 지금 피에르 바야르가 말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실천하고 있다. 텍스트에 대한 비평은 그것을 문장 하나, 단어 하나처럼 부분적 요소로 환원하여 심도있게 분석한 뒤 그 결과를 집적시켜 만들어 내는 기계적 행위가 아니라, 완전히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을 추구해야 하는 지적 상상력의 결정체이므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읽고 있는 이 리뷰야 말로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최고의 창작물이며 앞으로 나와 그리고 우리들이 목숨을 걸고 실천해 나가야 할 글쓰기 형태인 것이다라고 하는 건 헛소리고 이럴 땐 줄거리를 소개 하는 것 외에, 나로서도 별 다른 수가 없다는 걸 고백해야 겠다.
매맞을 각오로 한마디 더 하면,
들어보라! 줄거리 소개로 치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이 세계에 15억 6천만 724명이나 있기에 나는 이 같은 수고를 다음의 링크로 대신하려 한다.
http://www.bandinlunis.com/front/product/detailProduct.do?prodId=3255467
<푸쉬킨>
내 리뷰가 비록 당신을 속였더라도 부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이 책 살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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