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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 이누가미 일족 본문

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 이누가미 일족

WiredHusky 2011. 6. 30. 22:58




소년 탐정 김전일이라고 들어 봤는가? 평범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그가 가는 곳엔 언제나 피와 살육이 넘쳐 흐른다. 그가 서있는 곳은 언제나 밀실로 변하고 바로 그 곳에서 김전일 소년과 그의 여자친구 미유키, 그리고 몇몇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살해 당한다. 소년 탐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지만 실상은 가는 곳마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인간. 언제나 모든 사람이 죽고 난 뒤에야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외치는 소년. 그런데 이 소년이 도저히 풀기 힘든 트릭을 만날 때 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말 한 마디가 있었다. 바로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것. 도대체 할아버지가 누구길래? 당시에는 이 만화의 숨막히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이런 의문을 가질 여력도 없었다. 짐작하겠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얘기는 소년 탐정 김전일(원제: 킨다이치 소년의 사건 수첩)이 아니다. 바로 그의 할아버지 킨다이치 코스케에 대한 얘기다.






킨다이치 코스케는 1948년, 일본의 추리 소설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가 탄생시킨 가상의 탐정으로 신장은 다섯 자 네 치(163.3cm 정도), 체중은 십 사관(52.5kg)이라고 한다. 외모는 평범 중에 평범, 차림새는 주로 더벅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기성복 하카마에 게다를 신은 모습이다. 흥분하면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못생긴 외모에 지저분한 습관까지, 그리 인상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추리 능력 만큼은 보통이 아니다. 1948년 '혼징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 그 후로 '옥문도', '팔묘촌'을 거쳐 '이누가미 일족'에 이르러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이 글은 '이누가미 일족'에 대한 리뷰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일본 제 일의 재벌, 생사왕 이누가미 사헤이가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자 이누가미 일족의 대저택에 팽팽한 긴장감이 조여들고 있었다. 문제는 역시 유산이었다.  

이누가미 사헤이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어머니가 모두 달랐다. 그래서인지 자매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다. 자매들은 각기 아들을 한 명 씩 두고 있었는데, 징집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장손 스케키요를 비롯해 둘째 딸의 아들 스케타케, 셋째의 자식 스케토모가 그들이었다. 짐작하다시피 이들의 사이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된다. 사이가 나쁜 어머니들 밑에서 자랐으니 가족의 끈끈한 정 같은걸 배웠을리 만무하다. 이들은 명목만 가족이었을 뿐 실제로는 남남과 다름없었다.  

더욱이 이들은 일본 최고 재벌가의 손자들 아닌가. 아무리 유산이 많더라도 세 명이 나눠 갖는다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러니 그들에게 형제란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누가미 사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리 없는 이 비밀스러운 남자는 마지막까지 요상한 유서를 남겨 일족을 질투와 욕망의 화산 밑으로 던져 넣는다.






이누가미 일족에게는 식객이 한명 있었다. 다마요. 절세의 미녀였다. 다마요는 이누가미 사헤이가 빈털털이 고아일 때 그를 거둬 들인 나스 신사의 신주 노노미야 다이니의 손녀였다. 노노미야 다이니는 이누가미 사헤이를 먹이고 입혔을 뿐 아니라 그가 사업을 시작할 무렵 결정적인 자본을 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일본 제 일의 부자가 된 뒤에도 그 은혜를 잊지 않았는지 이누가미 사헤이는 노노미야 가문의 식구들을 극진이 보살폈다고 한다. 다마요의 어머니 노리코 그러니까 노노미야 다이니의 외동딸이 죽고 나자 다마요는 이누가미 일족에 들어와 식객이 된다. 그러나 이누가미 사헤이의 유서가 공개되자 이 식객은 열 두칸 다다미 방을 가득 채운 긴장과 기대감이 순간 질투와 시기, 경멸과 증오로 변해 자신을 찔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누가미 사헤이가 자신의 모든 유산을 다마요에게 물려줬던 것이다.  

이누가미 일족의 번영에 있어 노노미야 다이니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누가미 사헤이 보은은 어딘가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친 것도 사실이다. 아니, 단순히 지나치다고 평하고 그칠일은 아닌게 이 유서가 공개된 이후로 이누가미 가문은 누가 누구를 죽여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로 증오와 욕망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고아로 태어났음에도 일본 재계를 제패할 정도로 신묘한 남자였던 이누가미 사헤이, 그러나 그도 죽음을 앞에 두고서는 역시 냉철한 판단력을 잃고 말았던 걸까? 한가지 다행인건 다마요가 이누가미 사헤이의 세 손자중 한 사람과 결혼을 해야만 일족의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었다는 거다. 그러나 이 '다행'이란 과연 누구에게 해당하는 말일까? 다마요의 마음만 얻으면 일족의 모든걸 차지할 수 있는 세 손자들인가? 아니면 그들만 사라지고 나면 부와 권력을 독식할 수 있는 다마요인가? 






나는 지난 수 개월 동안 제대로 읽을만한 장르 소설을 찾아 방황했지만 수확은 신통치 않았다. 베스트셀러 목록의 단골 손님이라는 일본 현대 작가들의 소설은 대개가 왜 읽는지 모를만큼 절망적이었다. 앞으로도 일본 현대 문학은 무라카미 류의 'Sixty Nine'을 능가하는 소설을 내놓진 못할 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간만에 읽는 즐거움을 만끽한 장르 소설이었다. 연쇄 살인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한 소설의 분위기 탓에 끔찍한 사건의 긴장감이 약화된다는 점, 그리고 뻔한 트릭과 지나친 우연이 겹쳐 추리의 밀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바로 장르 문학의 멋과 맛인 것을.



<요코미조 세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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