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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맹자_유럽의 중세를 비웃지 마라

WiredHusky 2016. 6. 12. 12:00





전에 말한 적 있는데 강신주는 말보다 글이 좋은 사람이다. <감정수업>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책으로 경력에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동양철학에 대한 강신주의 깊이는 정말 대단하다. 특히 해석의 독창성 이라는 면에서 강신주의 견해는 반짝 반짝 빛이 난다.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이제 막 인문학을 접한 사람들에게 보석같은 전집이다. 어렵고 두려워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시리즈로 인문학을 공부해 볼 것을 추천한다.


내 기억에 강신주는 이 시리즈에서 두 권을 집필했다. 하나는 <노자&장자>, 또 하나가 이 <공자&맹자>다. 처음 읽은 건 <노자&장자>였는데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노장 사상을 송두리째 찢어발기는 충격적 경험이었다. 그래서 <공자&맹자>의 저자가 강신주라는 걸 보는 순간 곧바로 집어 들었다.


<공자&맹자>를 강신주가 썼다는 건 공맹의 말씀에 "네네"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 나와 타인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자, 그래서 장자의 사상을 소통의 철학으로 해석한 강신주에게 공맹의 무자비한 자기 중심주의는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지난번 <맹자>의 리뷰에서 나는 유학이 전란을 평정하기엔 너무 이상적이지만 평화의 시대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쓴 바 있다. 왜일까? 그것은 유학이 신분의 차별을 정당화함으로써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유학의 전통적 관습 규범인 삼강을 살펴보자. 군위신강, 군주는 신하의 법칙이 되야 한다. 부위자강, 아버지는 자식의 법칙이 되야 한다. 부위부강, 남편은 아내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 이게 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부장지수가 10점 만점에 8점은 나올 것이다.


유학은 근본적으로 군주, 아버지, 남편 중심적 사유 편향을 보여 준다. 가진 사람, 힘 있는 사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다워야 하고, 남편은 남편 다워야 한다. 신하가 군주 다울 순 없고 자식이 아버지 다울 순 없으며 아내가 남편 다울 순 없다. 고상한 척 얘기하지만 사실은 절대 내 자리를 넘보지 말라는 엄포가 숨어 있다. 누구든 이 규범을 거스르면 예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고 예를 모르는 사람은 금수와 같은 자니까 마을에서 내쫓든 때려 죽이든 상관 없다. 유학의 예는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 시키는 마력을 갖는다.


공자의 예와 맹자의 인은 인류의 역사를 꿰뚫는 보편적 윤리 규범이 되기 어렵다. 특히 공자의 예는 주나라 시대에 정립된 예 즉 '주례'의 복원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사상은 당시에도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춘추. 수 많은 제후들이 쏟아져 나와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상황에서 옛 나라의 법도를 복원하자니, 그 어떤 군주가 따를 수 있었겠는가? 공맹의 사상이 당시에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 마음을 갈고 닦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두에게 군자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나름 보편성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과연 선함이 인간의 본성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맹자는 우물에 떨어지려는 아이를 봤을 때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달려가 아이를 구한다는 예시로 성선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 우물 앞에 성인이 아닌 아기가 있었다고 해보자. 아기는 우물에 떨어지려는 아이를 보고 달려가 구해줬을까? 오히려 재미있는 피카부(Peekaboo) 놀이라고 생각해 박수를 치며 웃지 않았을까? 어른이 아이를 구한 건 죽음의 의미와 그 고통의 크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본성이 선해서가 아니다. 같은 예시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공감의 철학을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거기서 성선을 봤고 오늘날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공맹 이후의 유학이 그들의 사상을 신성화해 창의적 논의를 말살하고 반대자를 잔인한 방법으로 숙청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맹의 사상은 자기가 임의로 설정한 준거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 믿는 착각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폭력적 오만이 내재되어 있다. 흔히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의 중세를 다크 에이지라 부르며 조롱하는데, 과연 그 다크 에이지가 유럽에만 있었을까? 아주 오래 전 부터 유학은 혁신적 사상가들을 사문난적으로 찍어 끔찍한 형벌로 죽이는 야만을 부렸다. 유럽의 중세는 천 년, 동양의 유교는 이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유럽을 보고 웃을 일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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