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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_한국 경제의 등뼈를 조명하다

WiredHusky 2019. 5. 25. 11:19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보기와는 다르게 대단히 재미있는 책이다. 사회학 학술서처럼 보이고 내용도 그게 맞기는 하지만 서술 방식이 에세이처럼 느껴질 정도라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 제공하는 통계들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일뿐 반드시 독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토록 술술 읽히는 사회학 책이 언제 또 있었는가를 돌이켜보면, 글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거의 독보적인 책이다.

 

저자는 대우조선해양이라는 회사에 5년간 근무하며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산업도시 거제와 대한민국의 조선업을 분석하고 그 미래를 조망한다. 나는 이 시도가 사실상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업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거제의 중산층이 조선업의 몰락으로 인해 해체될 위기를 그리지만 이를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업 종사자들로만 한정해 해석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부의 대부분이 사실 제조업으로부터 축적된 것이며 우리가 중산층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 산업의 절정과 함께 탄생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매년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30%에 달한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최고이며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보다도(29%) 높은 수치이다. 혹자는 이것이 한국 경제의 문제라 지목하며 여타의 선진국들과 달리 제때에 서비스업으로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자기가 익숙히 접하는 현상과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파악하기 때문에 그 현상을 지탱하는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둔감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마트나 롯데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지 그 제품을 생산한 공장에서 사지 않는다. 미디어는 연일 4차 산업 혁명을 부르짖고 AI, IoT, 스마트 산업 혁명을 쏟아내며 새롭게 탄생한 유니콘을 조명할뿐 어느 시골 구석에 쳐박힌 알짜 중소기업의 공장에 눈을 돌리진 않는다. 세상이 마치 이들의 주도로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제조업이 탄생시킨 중산층과 그들의 높은 소득으로 인한 욕망의 발전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는 결코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느 대학을 나오든, 무슨 전공을 했든, 근면과 성실만 있으면 누구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시절 말이다. 이제 그런 유토피아는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흔한 분석은 이렇다. 기술로는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가격으로는 개발도상국과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어땠을까? 세계 조선업의 패권은 영국에서 스웨덴, 스웨덴에서 일본 그리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이들은 단물이 빠진 제조업을 버리고 제때에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부자 나라가 된걸까? 그렇다면 제조업은 단순히 미래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제조업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머리 속에 무엇이 떠오르는지 돌아보자. 쉼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음, 먼지, 재해, 기름에 쩐 작업복, 배우지 못한 공돌이. 산업과 직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기업 제조 공장을 한번이라도 찾아본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큰 편견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제조업이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부의 평등'을 고려하는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제조업에서 눈을 돌려선 안된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수백개의 IT 유니콘 기업이 탄생한다 하더라도 제조업 절정기만큼 두터운 중산층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되지 버릴 필요는 없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정확히 이런 의견을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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