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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_꼭 읽어보세요

WiredHusky 2020. 4. 19. 09:40

1932년 스웨덴 한림원은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에게 '양자역학을 창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여했다. 그의 나이, 갓 30살을 넘긴 때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그는 누구와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고 어디에 가 뭘 하며 지낼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부분과 전체>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다. 제목만 보면 양자역학의 심오한 원리가 골치 아프게 전개되는 물리학 서적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이 책은 일기에 가깝다. 어린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철학적 의문에 대한 사색부터, 스승과 제자, 동료들과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해 놓았다. 범접할 수 없는 대 물리학자의 일상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부분과 전체>를 읽으며 훌륭한 생각이 탄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환경'이라는 고루한 사실을 깨우쳤다. 하이젠베르크의 주변에 동일한 철학적 의문을 공유하고 토론할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아마 쓸데없는 걱정만 일삼는 무쓸모한 아이로 자랐을 것이다. 훌륭한 업적을 만드는 원동력은 단언컨대 의문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성실한 탐구도, 지독한 몰두도 애초에 의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생각은 정해진 공부에 몰두하다 벼락처럼 현시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의문과 그것을 풀어내려는 노력에 의해 탄생한다. 선현의 지식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의문이 없이는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는다.

 

독일이란 나라의 특징인지 아니면 그의 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주변엔 비슷한 의문을 갖고 심오한 토론을 즐기는 친구들이 즐비했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때로는 치열하게, 반대 의견을 내놓으며 설전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을 주고받는 와중에 서로는 자기도 모르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이 토론의 주제와 질을 높이는 선순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위대한 지식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의 추구다.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자이기 전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을 즐겨 연주했다. 그들은 물리학만 아는 바보가 아니라 음악, 철학, 정치 기타 등등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조금만 심오한 얘기를 나눌라치면 '이과라서 죄송합니다.' 같은 말을 하는 동료는 주변에 없었다. 그들에게 뭔가에 대해 토론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문과냐 이과냐가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할 힘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됐다. 이는 자연 과학과 철학이 오랫동안 하나의 뿌리로 여겨지던 서구 세계의 지적 전통 때문이었을 것이다(안타깝게도 이런 전통은 일본에 흘러들어 가 이과와 문과로 나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하이젠베르크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보다 그가 자신의 의문을 얼마든지 논할 수 있는 친구를 가졌다는 사실이 부럽다. 의문을 가지면 건방지다는 질책을 들어야 하는 사회에 살았다면 그는 결코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온 몸을 괴롭히는 외로운 밤. 그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그 밤을 같이 지켜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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