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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의 양자 공부_한국인이 쓴 양자 역학

WiredHusky 2020. 6. 7. 10:02

이 세상은 모두 원자로 구성되고, 원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양자 역학이므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양자 역학을 알아야 한다.

 

<김상욱의 양자 공부>가 여타 다른 책과 비교해 돋보이는 점은 단연 난이도다. 어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 학문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다. 역사는 그 자체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라 복잡한 이론이 등장하더라도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하다. 하지만 역사만 아는 걸로는, 어디 가서 얘기하기는 참 좋지만 그 분야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곁가지만 만졌다는 기분이 들면서 갈증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양자 역학의 역사와 핵심 이론을 잘 섞어 놨다. 내용은 크게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양자 역학의 태동에서부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사이를 훑으며 양자 중첩, 도약, 얽힘 등의 핵심 개념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과학자들, 그들이 진행한 실험, 그리고 자기들끼리 벌인 유명한 논쟁들을 풀어놓는다. 2부는 현대 양자 역학에서 흥미롭게 다뤄지는 상세 분야들, 예컨대 양자 역학과 카오스 이론, 양자 컴퓨터, 양자 다중 우주, 마지막으로 생명체의 양자적 해석 같은 개념들을 소개한다. 이중 생명체의 양자적 해석은 다른 차원의 일로만 느껴지는 양자의 세계를 일상의 코앞까지 끌어당김으로써, 어떤 전율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양자 역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세상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개별 원자와 그 집합체의 행동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 원리는 우리가 음식을 먹고, 숨을 쉬고 에너지를 대사 하는 과정을 설명할 시동을 걸고 있다. 언젠가 그 날이 오면 우리의 과학 교과서는 송두리째 바뀌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짜임새로만 본다면 1부가 압도적이긴 하다. 사실 1부와 2부는 양자 도약 수준의 괴리를 보여준다. 1부가 과정을 차곡차곡 쌓아 이야기를 만든다면 2부는 한번 도약한 양자가 지속적으로 점프하며 각 장을 넘어다니는 느낌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고, 현대 양자 역학의 이슈를 가장 흥미로운 순으로 나열한 것 같다. 1부가 본격적인 양자 역학 공부를 위한 수련 과정이라면 2부는 심화 학습을 위한 양자 역학 카탈로그랄까? 1부에서 핵심 개념을 모두 이해한 사람이라면 이제 2부의 주제 중 하나를 골라 퀀텀 점프를 하면 된다.

 

1, 2부가 모두 1부와 같은 짜임새를 갖췄다면 더 좋은 개론서가 될 수 있었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짧은 책 한권에 녹여내려는 취지는 이해가 된다. 후기를 보니 책은 다양한 지면에 소개한 칼럼들을 편집해서 탄생한 것이라고 하니, 애초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쉽고 재밌다. 어쩌면 한국 과학자가 한국말로 쓴 양자 역학 교양서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환영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번역서가 아닌 양자 역학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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