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

니클의 소년들 본문

니클의 소년들

WiredHusky 2021. 1. 17. 09:51

<니클의 소년들>은 우아한 문체로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는 보기 드문 책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부당한 대우 아래서도 소설은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감당하기 힘든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리고 그 차별이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암벽이 되어 인생을 가로막을 때, 인간은 조소와 비아냥으로 세상을 대하려는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이는 때때로 풍자로 승화하여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곤 한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인종차별 소설들은 대개 이런 방향성을 가졌던 것 같다. 한바탕 웃음으로 마음을 휘저은 뒤 가라앉은 한을 그러모아 밖으로 토해내는 것.

 

그러나 <니클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그 모든 소설과 완전히 다른 궤를 그린다.

 

가끔 이런 책을 한 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 있다. <니클의 소년들>이 그렇다. 나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의 마법 같은 분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연습을 해야 이토록 잔인한 역사를 이토록 우아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하려면 영화 <쇼생크 탈출>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착 가라앉은 레드의 내레이션이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는 앤디의 삶을 관조하는 영화.

 

 

<니클의 소년들>은 흑인 소년 엘우드가 우연히 차량 절도범의 차를 얻어 탔다 공범으로 몰려 '니클'이라는 소년원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다. 엘우드는 그날 대학으로 강의를 들으러 가는 중이었다. 고등학생이었지만 충분히 대학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 얻은 기회였다. 가난한 흑인 소년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대학까지 히치하이킹과 도보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자기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열 수 있는 기회의 첫날 엘우드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고 만다.

 

니클에서 아이들은 백인 교도관의 취미 생활에 이용된다. 끊이지 않는 성폭행과 구타. 구타에는 주로 가죽 채찍이 이용됐는데 그렇게 매질을 당한 뒤에는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때때로 매를 맞다 죽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 교도관은 니클의 음침한 땅 밑에 그들을 파묻었다. 소설은 시간이 흘러 니클의 흙 속에서 수많은 유골이 발굴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묘비명도 없는 평평한 무덤들이 드디어 빛을 보지만, 살아서도 문제였던 그들은 죽어서까지 문제가 되는 비극에 빠진다. 존재한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죽음마저 부정되는 세상을 맞닥뜨렸을 때 느낄 억울함에 비하면 살아생전의 비극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니클의 소년들>이 대단한 이유는 흔히 문학이라 불리는 것들이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문체를 뛰어난 수준으로 구현함에도 장르 소설을 방불케 하는 이야기의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더 부족할 것 없는 이 소설에 구성의 완벽함을 더해 독자를 놀라게 한다. 마지막 장에 다다른 순간 당신은 이 영민한 작가의 의도에 소름이 돋을 것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의 얼굴들  (0) 2021.01.31
일인칭 단수  (0) 2021.01.24
공정하다는 착각  (2) 2021.01.10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2) 2021.01.03
내가 말하고 있잖아  (0) 2020.12.27
Comments